[데스크시각-김찬희] 이누바(yhnova) 프로젝트 기사의 사진
18일이면 충분했다. 95㎡(28.79평) 크기의 단층 주택 하나를 짓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쁜 하얀색 벽을 세우는 데는 고작 54시간이 걸렸다. 방 4개에 욕실 하나를 갖춘 근사한 주택은 지난 3월 모습을 드러냈다. 이달에는 5인 가족이 여기로 이사를 해 둥지를 튼다. 부드럽게 휘어진 Y자 형태의 이 집에는 각종 센서와 모니터링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집 내부의 공기 질, 습도, 온도를 측정하고 제어하는 ‘스마트 홈’이다. 집 안의 센서와 모니터링 시스템은 3D(3차원) 프린팅 재료의 지속성을 점검하는 기능도 한다.

이 집은 3D 프린터로 만든 주택이다. 사람이 3D 프린터로 인쇄한 집에 사는 건 처음이다. 프랑스 낭트대 연구진과 지역기업 등은 지난해 9월 ‘이누바(yhnova)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낭트시가 제공한 좁은 부지에 맞춰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만들었다. 설계도면 데이터는 낭트대에서 독자 개발한 건축용 3D 프린터 ‘배티프린트(BatiPrint) 3D’로 전송됐다. ‘배티’는 설계도면에 맞춰 4m에 이르는 로봇 팔을 움직이며 건축 재료를 쌓아 올렸다. 벽체를 세울 때 로봇 팔에서 액체 상태의 건축 재료가 치약을 짜듯 나왔다. 고분자 단열재와 콘크리트 혼합물로 이뤄진 벽체를 다 세운 뒤에는 기존 방식으로 창호를 달고 지붕을 올렸다.

이게 이누바 프로젝트의 끝은 아니다. 낭트대 연구진은 시민단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더 싸게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무주택자를 위한 공공사업을 할 생각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파리 북부지역에 공공주택 18채를 더 지을 계획이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건축 혁명, 주택 혁명은 많은 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3D 프린팅 주택은 주거난 해소, 자원 절감, 스마트 홈 건설 등에서 상당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는 시 당국, 4개 기업과 함께 3D 프린터를 이용한 임대주택 건설에 돌입했다. 2023년까지 주택 5채를 인쇄할 예정이다. 중국기업 윈선은 2014년에 대형 3D 프린터 4대를 이용해 하루 만에 콘크리트 주택 10채를 짓는 데 성공했다. 이 기업은 2015년 건물 바닥과 벽을 인쇄한 뒤 건축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닷새 만에 5층 아파트를 올리기도 했다. 윈선 측은 3D 프린터를 이용한 주택 건축으로 재료를 30∼60%, 건축 기간을 50∼70%, 인건비를 80%까지 아꼈다고 발표했다.

주택뿐만 아니다. 3D 프린터는 신발, 기계류, 자동차, 식품 등으로 적용 영역을 무한하게 확장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고 폭발적 성장도 예고한다.

이 때문에 3D 프린터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있다. 중국도 기업과 대학을 연결해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 중이다.

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기업은 굼뜨기만 한다. 산업·기술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해 이미 형성된 시장을 공략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데 두려움을 갖는다는 느낌마저 든다.

3D 프린터로 인쇄한 주택은 주거난을 해소하고 부동산 쏠림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수많은 공공주택을 적은 비용으로 대량 인쇄한다면 집 한 채 장만하기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에 허덕이는 악순환도 끊을 수 있다. 저출산을 유발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인 ‘집값 장벽’을 없앨 수도 있다. 3D 프린터 기술은 미래 성장엔진을 찾지 못하는 한국 경제에 숨구멍이 될 수도 있다.

혁신성장은 멀리 있지 않다. 혁신을 이뤄내야 산업과 기업이 살고, 일자리가 생겨난다. 일자리가 있어야 개인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내수에 온기가 돈다. 그래서 혁신성장의 다른 말은 소득주도성장이다. 멀리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을 마냥 부러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