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김정은이 본 싱가포르 야경 기사의 사진
싱가포르의 야경을 감상하는 데 이만한 데가 있을까 싶었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꼭대기의 스카이파크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싱가포르 시청을 바라보면 주변 건물들이 모두 독창적인 형태의 디자인을 뽐내면서 밤하늘을 배경으로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그려내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분수쇼가 펼쳐지는 만(灣) 위에는 음악이 흐르고, 작은 배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며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초대형 화물선들이 다도해의 섬처럼 싱가포르 해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6만 달러를 자랑하는 싱가포르의 야경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다음 날인 지난달 13일 기자는 이곳을 찾았다. 전망대로 가는 티켓을 사려고 하자 창구 직원이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녀간 뒤 부쩍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왜 이곳을 방문했는지,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의 화려한 야경을 보면서 밤이면 대부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북한 땅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북한도 언젠가 가난에서 벗어나 싱가포르처럼 잘사는 나라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북한 방송은 김 위원장이 귀국한 직후 싱가포르의 경제적 잠재력과 발전상을 잘 알게 됐다는 그의 소감을 보도했었다.

김 위원장은 마리나베이샌즈를 보면서 북한에도 이런 초호화 카지노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을 수도 있다. 마리나베이샌즈는 독창적인 설계와 고난도 기술 때문에 준공 전부터 화제였다. 높이 194m 지상 57층의 건물 3개 위에 340m 길이의 스카이파크가 거대한 배 모양으로 올라앉은 형상은 이 건물을 단박에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스카이파크를 떠받친 각 건물의 하단부는 52도로 벌어진 채 서로 비대칭적으로 기대고 서 있는 모양새여서 보는 사람들의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설계도대로 건물을 지을 자신이 없어서 수주를 포기한 건설회사도 있었지만 쌍용건설이 설계자 모세 사프디의 만화 같은 상상력을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마리나베이샌즈를 완성시킨 한국 기업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남북 간 경제적 차이를 실감했을 것이다.

그가 싱가포르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리콴유가 1965년 신생국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를 맡았을 당시 나이는 42살이었다. 34살 나이지만 집권 7년차에 접어든 김 위원장이 리콴유를 롤모델로 삼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그 역시 개발독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북한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야경을 보면서 북한의 어떤 미래를 구상했더라도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북·미 관계 개선의 전제는 비핵화다. 그러나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잇따라 합의된 비핵화가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약속한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는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바로 송환될 줄 알았던 미군 유해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대표부 설치 등 빠른 속도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던 후속조치들이 줄줄이 올스톱이다.

유해 송환 외에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더라도 북·미 정상회담의 약발이 가을까지는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오는 10월 발표될 노벨 평화상 수상자 명단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채 11월 중간선거가 끝나면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지금 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면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행보를 자제하고 신뢰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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