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언더독’ 반란 있어 축구는 드라마가 된다 기사의 사진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을 실은 버스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자그레브 공항에서 자그레브 광장으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이날 현지 언론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인구(416만명)의 10%가 넘는 55만명이 대표팀을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 신화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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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러월드컵서 반란… 강호들 연파하고 준우승 차지
1966년 북한 8강 오르는 이변, 2002년엔 한국·터키 4강 진출
언더독이 우승한 사례는 없어


잉글랜드의 축구 전설 게리 리네커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28년 전 했던 자신의 말을 두 번 패러디했는데 내용은 정반대였다. 그는 조별리그에서 독일이 스웨덴에 2대 1로 이긴 후 트위터에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82분간 22명이 공을 쫓다가 독일이 1명 퇴장당한 후 21명이 남은 13분간 공을 쫓고 결국 독일이 이긴다”라고 남겼다. 하지만 한국이 독일에 2대 0으로 승리한 후에는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다. 90분간 22명이 공을 쫓는데, 독일이 더 이상 항상 이기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리네커의 말은 월드컵의 예측 가능성과 의외성을 동시에 나타낸다. 축구팬들은 월드컵 시작 때마다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같은 축구강국의 우승을 예측하면서도 ‘언더독(Underdog)’의 선전을 기원한다. 투견에서 밑에 깔린 개를 뜻하는 언더독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선거 등에서 뒤처지는 팀이나 사람을 의미한다. 약자의 선전을 바라는 ‘언더독 효과’라는 말도 있다.

이번 월드컵에선 준우승팀 크로아티아가 언더독 아닌 언더독으로 우승팀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크로아티아는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이반 라키티치(FC 바르셀로나), 마리오 만주키치(유벤투스) 등 선수면면으로는 축구강국에 뒤지지 않지만 팀으로는 본선 티켓을 겨우 확보하는 등 선전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월드컵 역사에선 크로아티아처럼 예상 밖 선전으로 축구팬을 열광시킨 팀이 다수 배출됐다. 대부분이 일회성 활약에 그쳤지만 수십 년간 회자되는 경기력을 보여준 팀도 있고, 언더독을 넘어 축구강국으로 진화한 팀도 있다.

월드컵에서 약팀의 선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오랜 기간 언급된 사례 중 하나는 1966 잉글랜드월드컵의 북한이다. 호주를 꺾고 본선에 첫 진출한 북한은 당초 입국 승인 여부조차 불투명했을 정도로 불청객이었다. 첫 경기 소련에 0대 3으로 패하며 경기력에 대한 기대감도 낮았다.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은 당시까지 두 번 우승한 이탈리아와의 세 번째 조별리그 경기가 시작하고 나서다. 칠레와 1대 1로 비겨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던 북한은 박두익의 골로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1대 0으로 잡았다. 경기가 열렸던 미들스브러 팬 3000여명이 8강에서 북한을 응원하기 위해 리버풀로 향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 경기였다. 북한은 에우제비오가 버티고 있던 포르투갈과의 8강에서 박승진, 이동운, 양승국이 한 골씩 기록하며 3-0으로 앞서나갔다. 또 한 번 승리가 예상됐으나 더 이상의 이변은 없었다. 에우제비오가 4골을 기록하는 등 포르투갈이 5골을 몰아치는 바람에 3대 5로 역전패했다. 북한 선수들의 활약상과 후일담이 담긴 영화 ‘천리마 축구단’이 2002년 영국에서 제작되기도 했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의 카메룬은 ‘검은 돌풍’의 시발점이 됐다. 카메룬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자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1대 0으로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프랑스 2부리그에서 뛰던 오맘 비익의 골로 아르헨티나를 침몰시킨 카메룬은 소련에 0대 4로 패하긴 했지만 루마니아를 꺾고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선 당시 38살의 노장 로저 밀러의 연장전 두 골로 콜롬비아에 2대 1로 승리했다. 8강 연장에서 잉글랜드의 리네커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2대 3으로 패했지만 2-1로 앞서나가는 등 축구 종가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밀러는 이 대회에서 4골을 뽑아내며 득점 3위에 올랐다.

1962 칠레월드컵에 첫 출전한 불가리아는 1994 미국월드컵 전까지 출전한 5번의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불운한 팀이었다. 미국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한조에 속한 불가리아는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대 3으로 대패하며 무승 징크스를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스에 4대 0으로 승리하며 32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기록한 데 이어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대 0으로 승리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16강에서 멕시코에 승부차기 끝에 겨우 승리한 데 이어 8강에선 독일을 2대 1로 물리쳤다. 이탈리아에 1대 2로 무릎을 꿇으며 4강에서 도전이 멈췄지만 스토이치코프가 6골을 기록하며 이 대회 득점 공동 선두에 올랐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선 월드컵에 첫 출전한 크로아티아가 전 대회 불가리아를 떠올리는 ‘닮은 꼴 활약’을 펼쳤다. 레알 마드리드의 스트라이커 다보르 수케르를 앞세운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루마니아를 1대 0으로 꺾은 크로아티아는 8강에서 독일을 3대 0으로 누르며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프랑스에 1대 2로 역전패하며 월드컵 첫 도전을 끝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개최국 한국과 터키가 나란히 4강에 진출하며 21세기 월드컵 첫 이변의 주인공으로 주목 받았다. 한국은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첫 선제골, 첫 승을 기록한 데 이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강팀을 연달아 격파했다. 터키는 중국, 일본, 세네갈을 꺾고 4강에 오른 뒤 3·4위전에서 한국을 이기고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선 코스타리카가 이탈리아, 우루과이, 잉글랜드와 함께 한 죽음의 D조에서 살아남는 이변을 연출했다. 코스타리카는 이 대회에서 치른 5경기에서 단 2골만을 허용하는 ‘짠물 수비’를 바탕으로 8강까지 진출했다.

월드컵 역사에서 여러 언더독이 탄생했지만 이들이 우승컵의 주인공이 되진 못했다. 크로아티아가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컵에 가장 가까이 가긴 했지만 21번의 월드컵에서 우승국은 8개국에 불과하다. 같은 메이저 대회인 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것과 다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주요 리그에서 나타난 전략·전술의 흐름을 재확인하는 무대로 새로운 전략·전술이 나오긴 힘들다”며 “이번 대회 우승국 프랑스처럼 강팀 역시 약팀의 강점을 흡수하기 때문에 약팀이 우승을 차지하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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