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이해 어려워” 농인 ‘수어성경’ 꼭 필요

수어성경 만드는 한국기독교수어연구소 제작 현장 가 보니

“한글은 이해 어려워”  농인 ‘수어성경’ 꼭 필요 기사의 사진
한국기독교수어연구소 수어성경 번역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에서 수어성경 번역작업 도중 수화로 말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이영빈 목사.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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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반 성경을 보면 되지 왜 수어(手語·수화언어) 성경이 필요한가요.”

한국기독교수어연구소장 이영빈 목사가 일반 청인(聽人) 친구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이 목사는 제2외국어 얘길 꺼낸다. 이 목사는 “농인에게 제1언어는 수어”라며 “농인에게 한국어는 불어, 영어와 같은 제2외국어인 셈”이라고 말한다. 그는 “청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글에 익숙지 않은 농인들은 문장 독해력이 더 떨어진다. 성경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돕기 위해선 수어성경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농인에게 한국어는 제2외국어

지난 12일 찾아간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 D관 지하 1층 한국기독교수어연구소 모임에서는 출애굽기 3장 14절 말씀의 번역 작업이 한창이었다. 목사 전도사 신학대학원생 등 4개 교단 8명의 사역자가 모여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문장을 두고 어떻게 수어로 표현할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소리만 없었지 끝장 토론을 방불케 했다. 책상엔 영어성경이 놓여 있었다. 한국어성경이든 영어성경이든 이들에게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전부터 나 혼자 있었다’라고 표현하는 건 어떨까요.” “‘영원부터 있는 나’ 이게 나을 것 같은데요.” “‘예전부터 살아있는 나’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문장 하나를 놓고 한 시간 넘게 논의가 이어졌다. 다행히 ‘영원 전부터 내가 있었다’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날 토론은 일종의 검수 과정이다. 번역된 말씀이 성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본다. 이 목사는 이를 공동체 점검이라 표현했다. 성도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다시 회의를 거친다. 가끔 말씀 번역을 두고 연구소 회원들 사이 논쟁이 계속되면 성경번역연구회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수어성경은 미래세대 위해 더 필요

사실 이 목사는 수어성경 제작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설교를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인 친구 목사가 만날 때마다 수어성경 번역 작업을 권유했다. 그때마다 거절했지만 미래세대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이 목사는 “30년 뒤 훌륭한 목사님들이 돌아가시면 그땐 성경을 가르칠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리 수어성경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내 농인은 35만명 정도로 집계된다. 이 중 기독교인은 1만명 정도다. 교역자는 더 적어 한국기독교농아총연합회 소속 사역자는 120여명이다. 연합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역자 80여명을 합쳐도 200명여명이다.

수어성경은 수화를 담은 영상에 기록된다. 성구를 글자대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성경의 주요 사건을 이야기 방식으로 한 편씩 번역한다. 현재 연구소가 번역한 말씀은 총 100편 정도다. 목표로 했던 200편 중 절반가량이다. 그러나 전체 성경으로 치면 진행률은 1.6%에 불과하다. 2035년까지 성경 전체를 번역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작업해서는 현실적으로 목표 달성이 어렵다.






이 목사는 “성경 전체 번역을 위해선 매일 모여 번역해야 하는데 경제적, 공간적 제약으로 쉽지 않다”며 “원래는 작업 자체가 중단될 뻔했는데 삼일교회에서 목요일 하루 공간을 빌려줘 작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수어성경 제작이 2020년 가을쯤 완료된다고 한다”며 “우리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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