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남중] 자전거 헬멧 꼭 써야 하나 기사의 사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9월 28일부터 자전거를 탈 때 헬멧 착용이 의무화됐다. 저녁에 운동 삼아 자전거로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주말에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탈 때, 퇴근길 공공자전거를 이용해 지하철역까지 이동할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갈 때 앞으로는 헬멧을 챙겨야 한다.

헬멧 착용 의무화가 시행되긴 하지만 처벌 규정은 따로 없다. 그래서 이 법 때문에 헬멧을 쓰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헬멧을 안 쓰면 위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법이 시행되면 자전거 이용자 상당수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고라도 나면 헬멧 문제는 주된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전거 이용자가 사고 책임을 떠안아야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 모두 헬멧을 쓰자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헬멧을 쓰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이다. 당장 이 더위에 헬멧을 써야 한다면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헬멧은 들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운 물건이기도 하다. 마트나 지하철역에 가기 위해 5분간 자전거를 타는데 헬멧을 써야 한다면 어떨까?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회사에 간다면 헬멧은 어디에 둬야 하나? 공공자전거를 이용하기 위해 개인 헬멧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야 되는 나라가 거의 없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만 헬멧을 강제하는지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7년 국민일보가 자전거 선진국을 보고하는 시리즈를 내보낼 때 취재팀의 일원으로 유럽을 돌아본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취재팀이 방문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덴마크, 일본 등 자전거 선진국으로 꼽히는 어느 나라에서도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곳은 없었다. 호주, 뉴질랜드 등 몇 나라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취재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관문인 중앙역 앞에서 한동안 도로 풍경을 바라본 적이 있다. 도로 위는 ‘자동차 반 자전거 반’이었다.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못 하는 게 없었다. 휴대전화를 쓰는 건 기본이고, 페달을 굴리면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키스를 했다. 자전거에 달린 커다란 장바구니에 쇼핑한 물건을 가득 실은 백발의 할머니, 아이들을 앞뒤로 2명씩 4명이나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엄마도 보였다. 그러나 그 많은 자전거 탄 사람들 중 헬멧을 쓴 경우는 아이들 말고는 없었다.

헬멧 문제는 막 자리를 잡아가는 공공자전거에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공공자전거를 운영하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헬멧을 어떻게 제공해야 될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보다 이동성이 훨씬 큰 헬멧을 관리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헬멧 때문에 공공자전거 이용자가 줄 가능성도 간과돼선 안 된다. 10분 20분 자전거를 이용하기 위해, 2㎞ 3㎞ 이동하기 위해 공공자전거에 비치된 공용 헬멧을 쓰려고 할까? 누군가의 땀 냄새가 밴 그 헬멧들이 공공자전거를 탈 마음을 꺾어버리지는 않을까?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면 보다 안전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탈 때도 헬멧을 쓰면 보다 더 안전해진다. 수영을 할 때도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하면 훨씬 안전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규제가 초래하는 불편이나 부작용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진행된 자전거 헬멧 논쟁에서 헬멧 강제화가 진 이유는 자전거 이용률을 낮춘다는 점 때문이었다.

헬멧 착용 의무화는 과잉 입법일 뿐만 아니라 탁상공론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자전거 사고를 줄이고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전거에 안전한 도로·교통 환경을 만들거나 자동차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전거 배려 교육이나 규제가 핵심이라는 게 자전거 선진국들의 결론이다. 도로나 자동차는 그대로 두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헬멧 하나 씌운다고 위험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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