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난민 신청자 불체자로 전락시킨 졸속 심사 통보… ‘복붙’ 공지에 위법성 논란 기사의 사진
지난달 29일 제주시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상담을 줄지어 기다리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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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에 심사 통보 방법·시기 명확히 규정 안돼 기계적 통보 일쑤
출석 3회 불응 땐 심사 일괄 종료, 억울한 불법체류 전락 사례 발생… 신상정보 공개한 홈피 공고도 위법
작년 난민신청 9942건 달하는데 담당 인력 서울 11명… 지방 1∼2명
예산·인력 확충 시급하지만 정치권은 심사기간 단축에만 매달려
법무부 “문제 된 공고 모두 삭제했다”


난민신청자 A씨는 2014년 2월 휴대전화에서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낯선 번호가 오후 4시 넘어 1분 간격으로 두 번 찍혀 있었다. 한 시간 뒤 하던 일을 마치고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기계음을 통한 자동응답이 반복해 들려왔다. 매일 날아오는 스팸전화 중 하나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이를 넘겼다. 당시는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A씨는 그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자신의 운명을 영영 바꿔버렸다는 사실을 4개월 뒤 알게 됐다. 취업 허가 문의를 위해 출입국사무소를 찾은 A씨는 자신의 난민심사가 미처 알지도 못한 사이 끝나 있다는 걸 발견했다. 법무부는 A씨에게 ‘전화 두 통을 건 뒤에도 또 한 번의 통보 절차까지 마쳤다’고 했다. 법무부의 난민심사 종료 지침인 ‘출석통보 3회’가 끝나 A씨의 심사가 일방 종료된 것이다.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체류연장 신청 기한을 놓친 A씨는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했다.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범칙금 수백만원을 부과했다. A씨가 혼자 갚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었다. 더구나 불법체류 신분으로 바뀌면서 합법적으로 일을 해 벌금을 갚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난민심사 출석요구 통보 절차가 졸속 처리돼 심사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사례는 비단 A씨뿐만이 아니었다. 국민일보가 22일 난민인권센터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에서도 통보를 제대로 받지 못해 심사가 강제 종료된 사례가 2건 발생했다. 심사를 받지도 못한 채 절차가 종료됐음에도 이들의 난민심사 서류에는 ‘남용적 난민재신청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함부로 난민 신청을 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낙인이다. A씨처럼 난민신청자가 불법체류 신분으로 전락할 경우 범칙금 부담과 추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예 잠적해버릴 수 있다.

난민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잇따르는 이유를 법상 출석요구 통보 방법이나 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난민법 8조6항에는 “법무부 장관은 난민신청자가 면접 등을 위한 출석요구에도 불구하고 3회 이상 연속하여 출석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난민인정 심사를 종료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부터 통상 우편 등 통보 3회를 거친 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홈페이지에 공고를 해왔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명확한 규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난민법에 근거해 심사 출석요구에 3회 연속 불응하면 심사를 일괄 종료한다. 소명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통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계적으로 심사가 일괄 종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해당 공고문이 올라오는 곳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한글 홈페이지뿐이다. 영문 홈페이지가 있지만 제도 변경을 알리거나 절차를 안내하는 정도의 내용만 담겨 있다. 한글을 읽을 수 없는 난민신청자라면 홈페이지에서 공고를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현재 사실상 마지막 출석통보 절차로 쓰이는 홈페이지 공고에는 정부의 법 위반 소지가 발견됐다. 난민법 17조는 난민신청자의 신상을 본인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특히 난민신청 사실은 동의가 있더라도 출신국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국민일보 확인 결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홈페이지에 PDF파일 형식 등으로 게재된 심사출석공고에는 난민신청자의 이름과 출신국가, 출생연도, 성별과 주소가 모두 공개돼 있었다.

출석 장소를 엉뚱한 곳으로 공고한 황당한 실수도 확인됐다. 서울 지역 난민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이 지난 3월 6일부터 이달 17일까지 4개월여간 홈페이지에 18차례 올린 난민심사출석 공지 영어 번역문에는 본래 난민신청자들이 출석해야 할 ‘서울사무소(Seoul immigration office)’ 대신 ‘대구사무소(Daegu immigration office)’가 기재돼 있었다. 두 장소는 약 241㎞ 떨어져 있다.

해당 영어 번역문은 대구 출입국사무소가 올린 난민심사 출석 공지 문장과 일치한다. 다른 사무소의 공고 글을 그대로 복사해 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다. 해당 사무소는 4개월간 같은 글을 올리면서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난민신청자 입장에서는 자칫 홈페이지를 통해 심사 장소를 잘못 알고 갔다가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 난민 전문가는 “피해자가 국가배상청구 소송까지 걸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국민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22일 문제가 된 난민심사 출석 공고를 모두 삭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통보 절차가 끝난 난민신청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일을 하다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다. 이어 “향후 공고에서 문제가 되는 개인정보 등을 삭제하고 난민신청자 본인만 알아볼 수 있도록 지침을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졸속 행정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으로는 난민 관련 인력 부족이 지적된다. 현재 서울 지역 난민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 직원은 11명이다. 광주·대구 등 지방 출입국사무소는 난민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 1∼2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난민신청 9942건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국회는 난민 심사를 내실화하기보다 심사 기간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춰 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10명이 지난 18일 발의한 난민법 개정안은 난민신청 접수 뒤 심사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2개월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행 방법은 언급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역시 심사 기한을 3개월로 단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최근 난민 심사 회부 결정 단계에서부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난민신청 남용방지법’을 발의했다.

법무법인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단순히 법에 명시된 기간을 줄여 심사기간을 줄이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면서 “정말 심사기간을 줄이려면 예산을 확충하고 난민심사관을 증원하도록 정치권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민공익지원센터 감동의 김진 변호사도 “난민업무 담당 공무원들이 밤을 새워서 일하는데도 6개월 기간이 초과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 무턱대고 법이 규정한 기간만 줄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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