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사방이 유독물질… 모르는 게 약? 기사의 사진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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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 코팅제·일회용 종이컵… 생활제품서 과불화화합물 활용
식약처 “인체 악영향 증거 없지만 반감기 길어 지속적 모니터링”
코팅 프라이팬은 가열해서 사용… 유해성분 흡입돼 폐 망가질 수도
EU, 2020년부터 유통 막는데 국내선 규제 느슨하다는 지적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유수영(42·여)씨는 1년 전부터 코팅 프라이팬 대신 스테인리스팬을 쓰고 있다. 스테인리스팬은 요리할 때 음식이 잘 눌러 붙고 무거워 코팅 프라이팬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음식이 눌러 붙지 않도록 한 코팅제에서 유해한 화학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접하면서 스테인리스팬을 쓰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는 “모를 땐 괜찮았는데 알고 나니 찝찝해서 코팅 프라이팬을 못 쓰겠더라”고 했다. 유씨가 말한 코팅 프라이팬의 유해물질은 ‘과불화화합물(PFCs)’이다.

최근 대구 수돗물에서 이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이 검출돼 논란이 됐다. 정확히는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이라는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이름의 물질이다. 이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지만 동물 실험에서 체중 감소와 콜레스테롤 및 갑상샘호르몬 수치 변화 등의 결과가 나왔다. 이런 사실이 시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식수 대란’을 불렀다.

과불화화합물 생활제품, 곳곳에

과불화화합물은 이번 수돗물 사태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흔히 접하는 물질이다. 조리용 프라이팬·냄비 코팅제나 햄버거·피자 등 패스트푸드 포장지 및 용기, 방수 등산복, 일회용 종이컵, 전자레인지용 팝콘 봉지, 오염방지 카펫, 소화기 분사액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열에 강하고 물이나 기름 등이 쉽게 스며들거나 오염되는 것을 막아주는 특성을 갖고 있어 1950년대부터 각종 생활제품과 공업 분야에 활용돼 왔다. 하지만 환경이나 동식물 내에서 잘 없어지지 않고 생물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전 지구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과불화화합물은 화학구조상 탄소와 불소의 결합물로 17종 이상 많은 종류가 있다. 특히 과불화옥탄술폰산(PFOS)과 과불화옥탄산(PFOA)은 만성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PFOS의 경우 대부분 국가에서 생산·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PFOA는 제조사들이 자발적 생산 감소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쓰인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PFOA를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로 분류해 놓고 있다. PFOS와 PFOA의 유해성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엔 화학구조를 조금 바꾼 여러 대체물질이 개발돼 제품에 활용되는 추세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23일 “과불화화합물은 인체를 비롯한 생물체에 장기적으로 축적될 경우 암을 유발하거나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인체 내 반감기 최대 5.4년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과불화화합물은 잘 분해되지 않는다. PFOA의 경우 인체 내 반감기(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가 3.8∼5.4년이나 된다”고 말했다. 쥐(90일) 원숭이(200일)에 비해 훨씬 길다. 과불화화합물은 주로 간과 신장, 혈청(혈액) 등에 쌓여 독성을 내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2016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팀이 수유하는 여성 264명을 대상으로 모유 속 PFOA와 PFOS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98%에서 검출됐다. 검출량은 각각 평균 0.072ng/㎖, 0.05ng/㎖로 외국에 비해 특별히 높거나 인체에 위험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과불화펜타노인산(PFPeA) 과불화헥사노인산(PFHxA) 과불화헵타노인산(PFHpA) 같은 대체물질들이 중국 프랑스 등 국가보다 높게 나왔다.

최 교수는 연구 논문에서 “PFOS나 PFOA는 10여년 전부터 우려가 제기되며 사용이 줄고 있지만 최근 사용이 증가하는 대체물질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해 검출된 농도가 인체에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윤철 교수도 “신물질들의 건강 영향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아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지만 당뇨병이나 갑상샘 기능, 어린이 성장발달 등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15년 국내 성인과 청소년, 어린이 약 777명을 대상으로 과불화화합물 17종의 혈중 농도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모든 연령대에서 PFOS와 PFOA가 검출됐고 나이가 많을수록 농도가 높게 나왔다. 대상자가 자주 먹는 음식 50종에 대한 과불화화합물 함량 조사도 이뤄졌는데, 인체노출허용량(일일섭취한계량·TDI) 대비 PFOS는 1.67%, PFOA는 0.3% 이내 안전한 수준으로 파악됐다. 과불화화합물의 인체노출 안전 기준인 TDI는 PFOS의 경우 0.15㎍/㎏·bw/day, PFOA는 0.10㎍/㎏·bw/day이다.

코팅 프라이팬 써도 되나

식약처는 또 불소수지(PTFE) 코팅 프라이팬의 PFOA 검출 수준을 검사한 결과 불검출∼1.6ppb(평균 0.03ppb, ppb는 10억분의 1 단위) 수준으로 매우 낮았게 나왔고 TDI 대비 0.003%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PTFE 코팅제에는 PFOA가 가공 보조제로 첨가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과불화화합물이 현재 일반적 노출 수준에서 인체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면서도 “실험동물과 야생동물에 대한 영향이 확인됐고 사람의 몸속에서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인간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PTFE 코팅 프라이팬에 대한 식약처의 과불화화합물 검출량이 과소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 국책연구원이 유명 불소수지 코팅 프라이팬 업체 2곳의 제품을 검사한 결과 PFOA 검출량이 식약처가 공개한 최대 검출량(1.6ppb)보다 A업체는 5배, B업체는 4배나 높게 나왔다.

PTFE 코팅 프라이팬의 경우 가열하면서 사용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연기)를 통해 과불화화합물을 흡입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프라이팬은 항상 200도 넘게 가열되기 때문에 기화된 유해 성분을 마시게 되고 폐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국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비흡연 여성 폐암의 원인 중 하나로 주방에서의 유독가스 흡입이 지목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홍윤철 교수는 “고열로 프라이팬 표면이 손상되면 벗겨진 코팅제가 인체에 들어가 영향을 줄 순 있지만 흡입 독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세계 규제 나서지만 우린 한 템포 늦어

세계 각국이 과불화화합물의 생산과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환경과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오염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PFOS 등 일부 과불화화합물은 2009년부터 국제협약(스톡홀름 협약)에 따라 새로운 ‘잔류성 유기오염 물질(POPs)’ 목록에 올라 보다 중점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환경부와 식약처가 국제협약 및 국내법에 따라 과불화화합물 관리를 하고 있지만 해외 선진국에 비해 규제가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6월 모든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규제 법안이 발의돼 2020년 7월부터 모든 회원국에서 제조·마케팅(유통)에 쓸 수 없다. 여기에는 코팅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쿡 웨어)에의 사용 금지도 포함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지난 5월 등산복 방수처리제로 쓰이는 과불화화합물을 2023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인하대 의대 임종한 교수는 “PFOA와 PFOS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의 자발적인 생산 감소로 오염 수준이 낮아지고 있으나 국내에선 이러한 과불화화합물 오염 수준이 다소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대구 수돗물 사태에서 보듯 대체물질들의 사용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나 연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임 교수는 “일일섭취한계량(TDI)에 비해 위해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전체 과불화화합물의 농도는 높아지고 노출된 집단, 특히 태아 및 영유아의 건강 위험을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온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현재의 TDI는 동물실험을 바탕으로 산출한 것으로 사람에서의 독성 영향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TDI 산출 증거가 되는 동물실험 자료 외에 직접 사람에게서 현재의 노출 수준으로도 태아의 체중 감소, 2세에서의 신경발달 저하, 남성의 정자 수 감소(불임), 산모의 갑상샘기능저하와 유의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현재의 노출 수준이 TDI에 비춰 위해도가 낮다는 이유로 과불화화합물의 위험성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선진국에서 과불화화합물 노출에 따른 인체 피해 결과에 주목해 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단순히 유해성 수준의 논의에 머물고 있다. 해외에 비해 대응이 한 템포 늦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모니터링, 인체 영향 조사와 더불어 주방용 조리기구, 생활용품, 의류 등을 통한 과불화화합물 노출에 대한 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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