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총살되는 한국인과 돈스코이호 기사의 사진
완전무장한 일본군인 6명이 나무에 결박된 조선인 1명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새끼줄로 결박된 사내는 두루마기를 입었고 광목으로 눈을 가렸다. 하늘이 어둡게 채색된 삽화다. 1904년 영국 주간화보신문 런던뉴스 6월 25일자에 실린 이 삽화의 설명은 이렇다. ‘스파이를 죽여라! 러시아군에게 정보를 준 조선 스파이를 총살하는 일본군.’ 앞서 런던뉴스는 그해 4월 9일과 23일에도 조선 땅에서 벌어진 러일전쟁 삽화를 싣는다. 부동항 요동반도를 확보한 러시아가 제물포로 남하를 계속하자 일본이 영국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일본군은 이해 봄 부산 경산 상주 괴산 원주 서울 평양을 거쳐 의주 압록강까지 진격한다. 런던뉴스, 스피어, 그래픽 등 영국 언론은 종군삽화 특파원을 조선에 보내 전황을 송고했다.

9일자 삽화는 일본군에 잡혀 지게로 짐을 나르는 조선인을 그렸다. 그 짐꾼 옆에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처량하게 쳐다보고 있다. 코트를 입은 일본 장교 두 사람이 호탕하게 웃으며 걷는 모습이 함께 담겼다. 23일자 삽화는 각기 기마병들의 이동과 휴식이다. ‘이천 방향으로 향하는 일본 군대-압축 사료를 지고 가는 노동자들’ ‘서울에서의 전쟁과 평화-공터 숙영지와 조선 가정’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정명가도(征明假道)의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1895년 내 땅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됐다. 그런데도 또 우리 땅에서 전쟁이다. 이 러일전쟁을 집중 보도했던 또 다른 주간지 스피어는 그해 6월 11일자에 ‘바둑을 두는 병조 참모’ 삽화를 실었다. 제물포에서 러시아군이 일본군에 궤멸되고 일본 제2군단이 평양에 입성해 온갖 패악질인데 한가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스피어는 6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도 담았다. 그림의 조선 국경 성읍마다 포화가 터진다.

1904년 10월 러시아는 여순전투 등에서 일본 군사력에 압도당해 패하자 유럽 쪽 발틱함대를 조선으로 출항시켰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3만㎞ 대항해였다. 그리고 1905년 5월 쓰시마 해전에서 발틱함대가 일본 해군에 궤멸된다. 함대 38척 중 살아남은 4척 중 하나가 울릉도 앞바다서 침몰하는데 그게 바로 ‘보물선’ 돈스코이호다. 승자 일본은 이해 11월 17일, 한국과 을사늑약을 체결해 우리를 사실상 식민지로 삼는다. ‘보물선 돈스코이호’ 얘기가 화제가 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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