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 포위된 삶…지구에 미안해 모였다는 환경 시민모임 ‘어쓰’ 기사의 사진
환경 시민모임 ‘어쓰’에서 활동하는 남예진 윤다미 박효원씨(왼쪽부터)가 평소 사용하는 텀블러, 스테인리스 빨대, 천으로 된 장바구니, 손수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들은 “100가지 환경운동보다 개개인의 사소한 실천이 더 영향력이 크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어쓰 회원들이 일회용컵 사용실태를 모니터링하며 수거한 여러 재질의 일회용컵. 최종학 선임기자, 어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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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가 아닌 시민모임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뭐라도 해야겠다’ 하나둘 뜻을 모았다. 이들이 원하는 건 하나, 지구상에 넘쳐나는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일이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나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라는 거창한 말을 내세우진 않는다. 대신 스테인리스 컵에 대나무 빨대가 자연스러운 세상, 물건을 사고 버리는 게 덜 미안한 세상을 꿈꾼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시민모임 ‘어쓰’에서 활동하는 박효원(39) 윤다미(29) 남예진(25)씨를 만났다.

어쓰는 지난 5월 카페 일회용컵 사용실태 모니터링 활동을 계기로 탄생했다. 모니터링 아이디어를 낸 건 ‘망원동 에코하우스’의 저자 고금숙(40)씨다. 고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박씨를 포함해 모니터링 참여자를 온·오프라인으로 모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일반인들이 모였다. 회원 수는 15명. 실제 모니터링에는 ‘크리킨디 센터’(서울시립 청소년미래진로센터)에 다니는 청소년 10여명도 함께했다. 박씨는 “어쓰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난감하다”며 “일종의 프로젝트 팀”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두 차례 오프라인 회의를 거쳐 지난달 4∼15일 28개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 브랜드의 매장 84곳을 방문했다. 손님들에게 다회용컵 사용 여부를 묻는지, 일회용컵이 재활용 가능한 형태인지 등을 조사했다. 각 업체의 일회용컵 처리 규정도 일일이 공문을 보내 확인했다. 기획부터 설문지 작성, 통계, 카드뉴스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비전문가’인 어쓰 회원들이 직접 했다. 각자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역할을 분담했더니 일처리도 빨랐다.

조사 결과 매장의 86.9%가 고객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했다. 업체 대부분(92.9%)이 일회용컵 몸통이나 뚜껑에 로고를 직접 인쇄해 재활용이 어려웠다. 어쓰는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일회용컵 줄이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1000명을 목표로 하는 이 캠페인에 24일 현재 600여명이 참여했다.

“나부터 일회용품을 안 쓰려 해도 늘 한계가 있더라고요. 더 올바른 소비를 하고 싶은데 선택지가 없을 때도 많고요. 소비자뿐 아니라 공급자의 생각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하는 윤씨는 “일반인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고 했다. 특정한 환경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서로의 힘을 빌려 캠페인을 진행하는 경험이 새로웠다. 전기차 제조업체에 다니는 남씨는 환경단체와 시민모임의 차이점으로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느낌”을 꼽았다. 박씨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며 “단체에 전문성이 있다면 시민들의 모임에는 자발성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에너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환경캠페인에 참여했다고 해서 남들과 확연히 다른 ‘친환경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세 사람은 평소에 텀블러나 머그잔을 챙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카페에 도착하고서야 ‘아차’하고 후회할 때가 많다. 세 사람 중 유일하게 대나무 빨대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구입한 박씨는 “가방에 (빨대를) 계속 넣어두면 꾸준히 갖고 다니는데 한번 빼면 까먹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장바구니는 꼭 챙기지만 비닐에 포장되지 않은 물건을 사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지난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이들로 하여금 일회용 쓰레기에 관심을 갖게 했다. 박씨는 “그동안은 버리고 나면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쓰레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의 폐자원 수입 중단에 따른 쓰레기 대란을 겪고 난 뒤 생각이 달라졌다. 박씨는 “과거에는 제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며 “더 이상은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윤씨도 쓰레기 대란 당시 충격을 받았다. 윤씨는 “분리수거만 잘하면 자원순환이 되는 줄 알았는데 소용없었구나, 눈에만 안 보이는 거였구나 하고 깨달았다”며 “공급자 중심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어쓰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아껴 쓰고 다시 쓰는 것이 당연한 부모 밑에서 자란 윤씨는 대학생 시절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다. 그는 “일회용품을 너무 쉽게 쓰고 버리는 친구들을 보며 내 자신이 구차하게 느껴졌다”며 “지금은 아껴 쓰는 생활습관이 창피한 게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일회용 쓰레기 줄이기를 남들보다 먼저 실천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씨는 어렸을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아 전기차 제조 분야에 취업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막 버리고 낭비하는데 전기차 기술만 개발한다고 해결되는 것 같지 않았다”며 “버리는 문제가 우선이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일회용컵의 현실’ 등 환경캠페인 영상을 제작해 올렸다. 정보를 알리는 목적도 있었지만 영상을 만들며 ‘나부터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세 사람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품의 가격이 친환경 제품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가볍고, 튼튼하고, 심지어 100년 넘게 쓸 수 있는 플라스틱이 왜 이렇게 싼 건지 모르겠다”며 “소비자가 일회용품을 구입할 때 환경부담금을 정확히 매긴다면 지금보다 플라스틱이 훨씬 비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조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 일회용품 대체재를 연구하고 개발하라는 건 불가능하다”며 “친환경 대체재가 더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윤씨는 “어렸을 때의 경험이 커서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부터 일회용품 문제를 인식하고 친환경적인 생활습관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씨는 “일회용컵 재질을 통일하는 등 생산 단계부터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쓰의 향후 행보에 대해 “자유롭게 열려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저희가 모은 데이터를 좀 더 편하게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고 싶어요.” “친환경 소비를 할 수 있는 매장 정보를 지도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인터뷰 자리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일상에 스며든 일회용 쓰레기를 줄인다는 건 생활습관을, 나아가 삶을 바꾸는 일이다. 박씨는 “쓰레기를 버리는 건 어쩌면 사적인 영역일 수 있다”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 무언가를 사고 버리는 것에 책임을 다하는 방식을 각자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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