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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의미 있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역사 여행]  의미 있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기사의 사진
“이 신생국 국민을 똘똘 뭉치게 만든 힘은 바로 신문에 있었다. 아메리카를 단결시키는 데는 아직도 신문이 필요하다.” 1835년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알렉시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 기술한 문장이다. 이 책은 “미국에 관한 어떤 이야기든 (토머스 제퍼슨이 아니라) 이 책을 인용하지 않으면 완전한 것이 못된다”고 하는 바로 그 책이다.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던 해(1805년)에 태어난 이 정치·역사학자가 나이 서른에 신생국으로 건너가 9개월여 동안 무려 1만1600여㎞를 여행하며 받은 주요 인상 중의 하나가 바로 ‘미합중국을 똘똘 뭉치게 만든 신문의 힘’이라는 그 자체가 인상적이다. 민주주의 태동기의 신문 역할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에피소드로 말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당시 취재 기자였던 필자가 20여년이 흐른 지금, 칼럼 요청을 받고 떠올린 주제가 왜 하필 ‘역사’고 ‘민주주의’고 ‘신문’이었을까. 이후 신문사를 그만두고 건너간 미국의 대학에서 인상 깊게 배운 과목이 마침 ‘미국의 정치사상(American Political Thoughts)’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조심스러움이 없지는 않다.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가 유행어가 되고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데이터 저널리즘’ ‘앱저널리즘’ ‘VR(가상현실) 저널리즘’ ‘로봇 저널리즘’ 등 새로운 저널리즘 현상들이 쑥쑥 고개를 내미는 현실이다. 이 와중에 민주주의 태동기 신문의 역할을 보러 역사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시대감각이 부족한 여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여년 만에 다시 만나는 국민일보 독자들과 먼지 쌓인 먼 옛날로 역사여행을 떠나고 싶다. 비역사 전공자로서 그 여행지를 구석구석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는 못되겠지만 먼저 도착한 여행자가 뒤에 온 이에게 가 볼만한 곳을 동행하며 알려주듯이, 그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함께 관광하고 싶다. 그 새 세상이란 무려 200년 전의 낯선 타국, 주로 미국 땅이겠다. 여행 과정에서 자유, 민주주의, 권리 등 시공을 초월해 존재해온 가치들과 그 가치들의 알파벳 활자를 꼭꼭 집어 조판을 하며 글 자체(영어)를 배우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와 혹은 또 다른 가치들을 평생의 철학으로 내면화해가던 신문인들의 숨결을 가급적 가까이 느껴보려 한다.

이 과정에서 전보(telegraph)로 기사 송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중요한 팩트부터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기사 작성 양식, 객관주의를 표방하다 독립을 원하던 식민지 주민 혹은 반대로 영국 식민정부로부터 탄압을 받던 신문인의 비애, 이런 이야기들을 옳고 그름의 시각에서 자유로운, 푸근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역사 여행이었으면 한다.

‘역사의 연구’로 유명한 아널드 토인비는 그 명저에 기술된 세계 26개 문명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수백만명의 목숨을 인간의 무기로 앗아갔던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사회에 팽배했던 인간성에 대한 회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됨’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떠나는 시간여행이 그런 정도의 현실의 비참함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함께 떠나는 독자들이 의미 있는 작은 ‘조우’를 하는 여행이 되기를 바라본다.

주영기(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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