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주한규] 기후변화 대처하려면 탈원전 수정해야 기사의 사진
지난 24일 오후 4시30분쯤 우리나라 전력수요는 9255만㎾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예비전력은 672만㎾로 전력수급 비상 준비단계 기준치인 500만㎾를 겨우 172만㎾ 넘겼다. 24기의 원전 가운데 17기, 61기의 석탄화력 중 59기 등 가용한 기저발전원과 7∼8기를 제외한 LNG 발전기가 거의 총동원돼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000만㎾ 이상 여유가 있던 전력 상황이 일부 발전소에 이상이 생길 경우 전력대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으로 악화된 근본 요인은 37도 이상까지 올라간 기온이다. 몹시 더운 날씨 때문에 방학 기간에 가정의 에어컨 수요가 급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높은 기온과 함께 재작년 말 시행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조치가 주택 냉방용 전력수요 급증의 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거기에 당국이 최대전력 수요를 지나치게 과소 예측해 적절한 공급 확대나 수요 감축 조치를 취하지 않아 전력수급 불안 상황이 초래됐다.

작년 말 확정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 누진제 완화에 따른 하계 냉방 증가 등의 수요 증가 요인이 적절히 고려되지 않았다. 최대전력 산정에 입력으로 사용된 기온 자료는 2011년 발표된 기상청 장기 기후변화 시나리오뿐으로 2016년과 2017년에 이미 나타난 바 있는 최근의 폭염 추이가 반영되지 않았다. 더구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7차 계획에 비해 대폭 하향 조정됐기 때문에 2018년 하계 최대전력은 8750만㎾로 낮게 예측됐다. 이 수치는 기준수요일 뿐 수요관리 조치를 통해 실제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한 목표수요는 8610만㎾로 더 낮게 설정됐다.

이 목표치가 계획 발효 첫해에 벌써 640만㎾ 이상 초과됐으므로 8차 계획의 수요 예측이 매우 부실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불합리하게 낮게 설정된 최대전력 목표수요 수치가 탈원전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는 것이다. 8차 계획의 2030년 목표수요는 1억50만㎾로 7차 계획보다 1300만㎾가량 적게 돼 있다. 이에 따라 7차 계획에 예정됐던 6기의 신규 원전 건설의 당위가 없어지고 나아가 허가 만기 원전의 계속운전도 불허하는 탈원전 정책이 당연시된 것이다.

근년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폭염은 지구 온난화에 기인한 것이다. 지구 기온의 지속적인 상승과 온난화의 요인이 되는 이산화탄소 증가 추이는 명백히 관측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지난겨울 혹한을 초래해 수요 감축 조치를 10번이나 발령해 대처할 만큼 난방 수요를 늘렸다. 올 여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부가 최대전력 수요 발생을 예측한 8월 중순까지 냉방 수요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때문에 올해와 같은 혹한과 폭염은 내년 이후에도 나타날 것이고,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적절히 이행되지 않으면 냉난방 수요 증가는 계속될 것이다.

원전은 기저전력원으로서 싸고 안정적으로 풍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정부가 하계 전력 고수요 기간 중 발전원가가 싼 원전을 가급적 많이 가동시키려는 이유는 수급 안정성 확보뿐만 아니라 전력시장 계통한계가격(SMP)을 낮추려는 데도 있다. 한편 원전은 가동 중에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으므로 기후변화 대처에 가장 유력한 에너지원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제도를 설계한 기후변화 권위자인 하버드대 로버트 스타빈스 교수도 최근 국내에서 열린 탄소시장 포럼에서 원전 확대 없이 온실가스 저감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원전의 가치는 파리기후협약 이행을 통한 기후변화 대처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데에도 있다.

쌀 생산이 과잉이라는 요즈음, 농촌 태양광을 확대하고 환경에 별 위해가 없는 해상풍력 증설을 통해서도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고비용이다.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의 고비용을 보완할 수 있다. 8차 계획보다 훨씬 늘어날 미래 전력 수요에 대비하고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탈원전 정책은 응당 재고돼야 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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