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기억 기사의 사진
‘물이 반밖에 없었다.’ ‘물이 반이나 있었다.’ 컵 속에 물이 정확히 반이 차 있었다고 치자.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의 기억에 따라 똑같은 것을 놓고 이렇게 뉘앙스가 정반대인 표현을 할 수 있다. 목이 매우 마르거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물이 많이 필요한 사람은 물이 적었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에 물을 먹고 싶지 않다거나 물이 조금만 필요한 사람은 물이 많았다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표현이 다른 게 아니라 인식이나 관점 또는 처한 상황이 다른 것이다.

기억은 맥락(context)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억할 대상 외에 함께 제시된 정보, 이를테면 당시 주변 상황, 기분 상태, 외부 자극 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신의 언행을 합리화시키는 쪽으로 기억이 향할 것이다. 그래서 맥락을 제시해주면 훨씬 더 기억을 잘할 수 있다. TV 수사물에 자주 나오듯 사건 당시 상황, 환경, 직전에 일어났던 일 등의 맥락을 상기시켜주면 기억이 되살아난다. 거짓 진술할 경우 수사관이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맥락을 제시하면 범인의 알리바이는 허물어진다.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서를 놓고 국방부 장관(예비역 해군 대장)과 기무사령관(육군 중장), 국방부 파견 기무부대장(육군 대령) 사이에 볼썽사나운 설전이 벌어졌다. 해당 문건을 인식하는 정도와 보고 시간에 대한 기억이 다르고, 문건의 위법성을 놓고 “군 36년 명예를 걸고” “완벽한 거짓말”이란 주장이 부딪혔다. 리더십도, 상관에 대한 예의도 없었다. 기무사는 장관의 명령만 받는 국방부 직할부대다. 이 정도로 군이 망가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발성 해프닝은 아닐 것이다. 사실관계야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의 거짓없는 기억, 기무사령관 보고 시 오고간 시간 등을 따져보면 금방 밝혀질 일이다. 그보다는 이런 황당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군 내부에서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교하게 살펴야 한다. 지난 9년 동안 비대해진 기무사의 개혁과 이에 대한 저항, 군내 주류를 바꿔보겠다는 정권의 의지, 비육사 출신 장관과 합참의장의 등장, 군 지휘부의 개혁에 대한 생각 등,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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