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맹경환] 가방을 앞으로 멘 여학생 기사의 사진
출근길과 퇴근길 언제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아는 오빠가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공기업을 찾아 지방으로 갔는데 나 같으면 당연히 대기업이지.” 갑자기 특정 주파수의 목소리가 음악 속을 파고들며 고막을 찌른다. 너무나 선명하다. 볼륨을 키워도 마찬가지다. 전화기 너머 친구에게 잠시 전화를 끊자고 한다. ‘휴’ 하고 안심하는 사이 다시 통화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집에서 자고 있는 언니를 깨우는 전화다. 그리고 다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결코 알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의 일상을 알게 된다.

비 내리는 어느 늦은 퇴근길이었다. 러시아워는 아니었지만 제법 사람이 많았다. 출입문 옆 의자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들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가방이 툭툭 손을 친다. 아주 여러 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참았다. 왜들 그럴까 생각하면서도.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면 백팩을 멘 사람들 때문에 여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아니다. 본인들이야 편하겠지만 백팩은 오롯이 한 사람 공간을 차지한다. 가방을 밑으로 내려놓든 옆으로만 메도 충분히 한 사람은 더 탈 수 있다. 지하철 객차 스크린에 가방은 앞으로 메거나 짐받이에 올려 두라는 캠페인 영상이 계속 흐르고 있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야근 후 오후 늦은 출근을 할 때면 늘 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 헬스클럽 강사인 듯하다. 아주 짧은 운동복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었다. 허벅지 근육에는 결코 오므리기가 저장돼 있지 않다는 듯 쩍 벌리고 있다. 헤드폰을 끼고 연신 허밍을 한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다. 본인만 즐거우면 된다.

조금 더 고약한 모습은 임산부 배려석에 버젓이 앉아 자고 있는 사람들이다. 임산부 배려석은 2013년 처음 서울 지하철에 마련됐다. 노약자석과는 별개로 일반석에서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쪽 좌석을 지정해 임산부들이 언제든 쉽게 앉을 있도록 했다. 지금은 ‘분홍색’으로 강조됐고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도 추가됐다.

최근 “임산부 배려석, 꼭 비워놔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임산부 배려석은 “배려지 의무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소개하며 독자들의 생각을 묻자는 취지였다. 의무가 아니라는 사람들은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무조건 양보를 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누구는 “양보는 자유”라고 했고, 다른 누구는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배려를 해야 하지만 같은 이유로 배려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훈계하기도 했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7개월 된 임산부 동료와 퇴근길 지하철을 탔는데 젊은 남자가 임산부석에 앉아 있기에 양보해 달라고 했더니 눈을 위아래로 흘기더라”는 사연도 있었다. 한 사람은 임산부 배지 달고 있어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눈감고 자는 게 열에 아홉이라고 했다.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선뜻 비워 달라고 할 수 없다는 사람도 많았다.

한때 유행했던 말을 빌리면, 임산부 배려석에 뻔뻔하게 앉아 있어도 “쇠고랑 차지 않는다”. 좁은 길을 나란히 여러 명이 느리게 수다를 떨며 걸어가면서 보행을 방해해도, 지하철에서 냄새 펄펄 풍기며 샌드위치를 먹어도 “경찰 출동 안 한다”. 다만 아름답지 않을 뿐이다. 눈총만 조금 받으면 된다.

상당수가 문화적이지 않은 중국인들을 3년 넘게 보다가 지난해 한국에 와서 지하철을 탔다가 가슴이 뭉클해진 순간이 있었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도 비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이 눈에 들어 왔을 때였다. 요 며칠 사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여학생들을 보곤 한다. 최근 지하철에서도 한 여성이 그랬다. 유행인가 싶기도 했다. 백팩은 뒤로 메라고 백팩이다. 편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불편을 감수하고 앞으로 멘 가방은 더 아름다웠다. 남을 위한 배려가 보였다. 이게 바로 교양이고 문화다.

맹경환 온라인뉴스부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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