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사라지는 길 기사의 사진
아빠가 길을 잃었다. 잠깐이었지만, 늘 다니던 동네 은행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맸다고 한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던 것 같다고, 아빠를 찾으러 다녀온 엄마가 전해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엄마는 앞으론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전한 뒤 한동안 말이 없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 어쩌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맏이인 내가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나타나는 나쁜 징조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아빠는 커다란 트레일러를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던 화물차 운전사였다. 나는 아빠가 지도를 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비게이션이 생긴 뒤에도 아빠는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았다. 여행길에 동생과 교대로 운전할 땐 내비게이션을 켜느니 마느니 남자 둘이서 옥신각신했지만, 아빠는 고집을 꺾은 적이 없었다. 심각한 길치인 나는 모르는 길 없이 어디든 단번에 척척 찾아가는 아빠가 신기하기만 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오고, 저쪽 길은 어디로 통하며, 어디를 가려고 하면 어떤 길로 어떻게 가야 하고….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탈 때마다 아빠는 당신이 알고 있는 길에 대해 끝도 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지도나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아가는 능력은 40여년간 운전사로 종사한 직업인으로서 갖는 아빠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길을 잃었다. 그것도 집에서 수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빠는 엄마가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적당히 녹여준 밀크 아이스크림을 하나 다 잡수신 뒤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한다. 아빠가 잠든 뒤 나를 도와주기 위해 우리 집으로 건너온 엄마는 반나절 사이 까칠해져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 거 같은데 우린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엄마.

황시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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