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의료계 미투와 샤프롱 제도 기사의 사진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지인 여성이 불쾌한 일을 당했다며 들려준 얘기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마치고 마지막 결과 상담을 할 때 남성 의사가 청진을 해 봐야겠다며 윗옷을 걷어 올려 보라고 했다고 한다. 간호사는 안내만 하고 진료실 문을 닫고 나가버린 상황. 지인은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머뭇거리며 윗옷을 조금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의사가 진료상 꼭 필요하다며 자신이 직접 지인의 속옷을 잡고 걷어 올렸다는 것.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지인은 “아무리 의사라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브래지어까지 만지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병원 진료나 치료를 받을 때 누구나 이런 민망했던 경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남성, 여성을 떠나 환자 입장에선 불쾌한 일이다. 그간 의료계 내에선 이런 의사들의 진료윤리 문제에 대해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못했다. 청진이나 촉진은 진료의 한 부분임을 의사들은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성추행 등은 일부 의사의 일탈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런 의사들이 최근 스스로 불미스러운 일을 차단하기 위해 성 관련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 초부터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미투(#MeToo) 운동에 의료계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 터져 나온 미투의 대부분은 의사와 전공의, 의사와 간호사 등 대표적 권력관계에 의해 이뤄진 성폭력에 대한 것들이었다. 진료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은밀하게 진행된 성폭력 사례에 대한 미투 폭로는 거의 없다. 대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 우울증 치료를 받던 여성 환자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게 전부다. 앞서 여성 지인의 사례처럼 진료 중 수치심을 느끼는 등 사소한 경험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미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진료 과정에서는 의사와 환자도 엄연히 권력관계가 성립한다. 의사가 진료 행위였다고 하면 환자가 대놓고 문제 제기를 하긴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미투의 확산으로 앞으론 환자들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진료 과정 중 환자들을 배려하고 의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샤프롱 제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샤프롱(Chaperon)은 프랑스어로 ‘젊은 여자가 사교장에 나갈 때 따라가서 보살펴주는 사람’을 말한다. 환자와 다른 성별의 의사가 유방 생식기 항문 등 은밀한 부위를 검사·진료할 때, 신체를 직접 접촉해야만 하는 도수나 물리치료 등을 할 때 동성의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가족, 보호자 등을 동석케 해 환자를 안심시키고 성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는 제도다. 영국의 경우 모범진료지침(Good Medical Practice)을 통해 샤프롱 제도를 의사 자율로 시행하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은밀한 진료 과목의 경우 환자에 대한 에티켓과 매너에 해당하는 지침들을 의사가 사전에 공부하고 진료에 임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국내 의사들도 일부 진료 현장에서 샤프롱을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 잘 모르거나 익숙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더구나 의사협회는 2006년 의사윤리강령과 지침에서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가 지난해에야 다시 넣었다. 11년간 진료실 윤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었던 셈이다. 한의사협회는 그나마 이런 윤리강령이나 지침도 없다. 몇 년 전 모 한의사가 진료를 빙자해 여중생 등 환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이후 논의조차 안 됐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환자단체는 샤프롱 제도 도입을 법적으로 의무화하자고 한때 주장했지만 이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없다. 의사협회는 올해부터 사이버 강좌를 개설해 관련 내용을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의료계 전반으로 하루빨리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반복적 교육으로 의사들의 윤리적 민감도와 경각심을 잘 유지토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민태원 사회부 부장대우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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