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지역 리포트] ‘음악 도시’ 부평의 아름다운 시절을 아시나요 기사의 사진
지난 21일 과거 미군부대 앞 클럽을 재현한 인천 부평의 라이브클럽 락캠프에서 애스컴시티 대중음악의 계보를 잇고 있는 정유천밴드 단장 정유천(오른쪽)씨가 밴드 멤버들과 함께 그 시절의 얘기를 담은 노래 ‘애스컴시티 나이트’와 ‘신촌’을 열창하고 있다. 인천=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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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10시쯤 인천 부평구 부평구청사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라이브클럽 락캠프. 인디밴드의 열띤 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색소폰 연주자가 무대에 나서자 관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자유자재로 연주한 주인공은 임명철(66·인천 검암동)씨. 부평올스타빅밴드의 지휘자이기도 한 임씨는 이날 지역의 대표 밴드인 정유천밴드와 협연을 통해 전국의 미군 부대를 순회하며 이름을 날렸던 옛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과거 인천 부평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의 클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막내 연주자였다. 그의 연주는 부평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는 듯했다.

인천 부평은 1973년까지 ‘애스컴시티’(Ascom City)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육군의 무기를 만들던 조병창이 있던 이곳엔 1945년 8월 이후 미군 제24군수지원사령부가 주둔하며 주한미군의 보급창 역할을 했다.

그해 9월 16일 미8군은 이곳을 ‘애스컴시티’로 이름 붙였다. ‘애스컴’(Ascom)이란 단어는 ‘Army Service Command’의 약자로 미군의 근무지원사령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1949년 미군이 철수했다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후 미 해병대가 이곳에 다시 주둔하게 됐고 1973년 6월 30일 애스컴시티가 공식 폐쇄될 때까지 이곳은 작은 미국이었다. 애스컴시티 안에는 보급창과 의무보급창은 물론 후송병원, 공병자재창, 병기창, 통신대, 정비대대, 항공대, 보충대 등이 있었다. 미군이 한국에 오면 보충교육을 이곳에서 받았다.

애스컴시티 폐쇄 후 상당수 미군 부대 부지가 반환됐지만 아직 40여만㎡는 반환을 앞두고 있다. 남아 있는 미군 부대 부지 안에는 과거에 지어진 건축물 수십여채가 한국 근대사를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부평이 한국 대중음악의 산실이자 당시 최고의 ‘음악도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등으로 한반도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1973년 애스컴시티가 폐쇄되기 전까지 인천 부평은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었던 곳이었다.

실제 많은 유명 가수들이 부평을 거쳐 갔다. 한국인의 출입이 통제된 영내 클럽에서는 패티김 최희준 윤항기 윤복희 등이 노래를 불렀다. 불멸의 가수이자 비운의 가수로 불리는 배호도 부평의 미군 부대에서 드럼연주자로 출발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로 널리 알려진 배호는 1년 6개월여 부평에서 드럼연주자로 일하는 동안 가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다졌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익히 알려진 가수 한명숙도 이곳의 클럽에서 노래했고 그룹 ‘사랑과 평화’의 보컬 이철호도 부평이 근거지였다.

가수 현미도 부평에서 자주 무대에 섰다. 현미는 2016년 한 공연에서 ‘애스컴시티’ 당시의 공연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현미는 “미8군에서는 오디션 붙은 사람만 노래를 할 수 있었다”며 “최희준 한명숙 등과 함께 트럭을 타고 미군 부대에 다니면서 노래를 했는데 당시 한국에선 퍽 귀했던 ‘두루마리 휴지’를 보고선 최대한 많이 돌돌 감아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왔던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음악도시’ 부평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지역에 ‘대중음악둘레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 이장열 대표는 31일 “부평 애스컴시티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군 기지로 그 주변은 당시 대표적인 대중음악 소비 공간이었다”며 “한국인들이 자연스레 미국의 대중음악을 접할 수 있던 곳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평 삼릉은 서울 용산 미8군의 오디션을 통과한 연주자들을 미군의 각 부대로 실어 나르는 정거장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수백명 거주하고 있던, 대중음악 창작 레지던스 공간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부평은 70년대 초까지 20여년 동안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생산과 소비, 유통 시스템을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갖춘 지역이었다”며 “부평을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지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대표는 부평에서 음악을 하는 이들의 힘을 모아 부평을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평지역이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부평올스타빅밴드’를 이끌면서 지역에서 부평의제21실천협의회 문화복지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유천 단장과 함께 포럼을 개최하고 답사행사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21일 현재 남아 있는 미군 부대인 캠프마켓 일대를 주민들과 함께 답사했다. ‘대중음악둘레길’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 대표는 “부평이 간직한 대중음악 자산들은 여태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 중요성을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며 “부평의 대중음악 자산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대중음악둘레길’을 조성해 활성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는 8월 이후에도 부평 신촌과 부평 삼릉의 대중음악 자산을 둘러보는 답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10월에는 대중음악둘레길 리본 달기 행사와 대중음악둘레길 조성 기념 록밴드 공연도 열 예정이다.

▒ 미군부대 앞 클럽 재현한 ‘락캠프’ 20년째 명맥
1세대 연주자들 ‘부평올스타빅밴드’ 탄생시켜


1973년 6월 이전까지 인천 부평 일대는 미군과 군무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주변은 미국산 제품과 미국식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 미국의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클럽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31일 부평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단체와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부평 애스컴시티 내에는 영내 클럽이 22개 있었고, 영외 클럽도 20개 이상이 있었다. 애스컴시티의 영내 클럽에선 당시 팝 음악 중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으로 인정받던 스윙재즈가 유행했다. 스윙재즈 밴드는 대개 7인조로 트럼펫과 색소폰 연주자가 반드시 포함됐다. 영외 클럽에서는 팝과 록음악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부평3동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신촌’(新村)으로 불렸다. 그들 중에는 가수의 꿈을 키우며 미8군 클럽에서 오디션을 보는 것을 목표로 상경한 이들도 많았다. 이들은 오디션을 통해 영외 클럽 무대에 섰고 실력을 갖추고 운이 좋았던 이들은 영내 클럽으로까지 진출했다.

부평역사박물관은 2015년 연구를 통해 미군 부대 주변에 있던 20여개 클럽의 존재 사실을 확인했다. 신세계, 맘보클럽, 서브달러, 드림보트홀, 아리랑클럽, 그린도어, 홍콩홀 등이다.

당시 미군부대 주변 클럽에서 연주자 등으로 활약했던 1세대들이 참여한 부평올스타빅밴드는 2005년 탄생했다.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대중음악을 지역의 자산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데 당시의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단장을 맡은 정유천(60)씨는 1997년부터 부평구청 건너편 건물 지하를 임대해 라이브클럽 ‘락캠프’를 운영해 왔다. 과거 미군부대 앞의 클럽을 재현한 것이다. 지난 21년간 이곳은 수많은 인디밴드들이 자작곡을 발표하는 장소였다. 애스컴시티 당시 클럽들이 서구의 음악을 우리나라에 전파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면 락캠프는 한국 밴드음악의 맥을 이어주는 고향 같은 장소가 된 셈이다. 실제 90년대 중반 이후 서울 홍익대 주변을 중심으로 인디밴드가 활성화되는 데에도 이곳을 거쳐 간 밴드들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 밤이면 정유천밴드를 비롯한 다양한 밴드가 락캠프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도 한다. 지난해에는 20주년 기념 사진전시회와 컴필레이션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정 단장은 “2016년엔 초등학생 20명을 모아 올스타주니어빅밴드도 만들었다”며 “주니어빅밴드는 구월동의 연습실을 빌려 매주 금요일 밤 연습한다”고 말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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