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원재훈] 광장으로 가는 버스 기사의 사진
최근에 우리들은 슬픔의 이중고에 시달렸다. 노회찬 의원의 불운한 소식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최인훈 선생도 돌아가셨다고 한다. 폭염에 시달리는 사막의 시대에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같은 존재들이 홀연히 사라졌다.

한 분은 정치인으로, 한 분은 희곡과 소설을 쓰는 문학인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남았던 분이다. 각자 다른 삶을 살았지만 서로 스며 있는 음과 양의 태극 문양처럼 가슴에 새겨져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마음을 다스려 주었다. 두 분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가슴이 아프고 현기증이 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면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 아름다운 화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변증법의 창시자로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아름다운 화음은 불협화음에서 탄생한다.”

이 말은 조화롭지 않은 음들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작곡 이론의 본질이기도 하다. 철학자는 음악적인 비유를 들었지만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실을 이해하려면, 그 사회의 모순과 대립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주장이지만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면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우리들의 갈등을 풀어내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것은 ‘반발적 조화 결합’이라고 불렀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대립. 진보와 보수, 빈자와 부자가 서로 치고 받으면서 거칠게 밀어내려고만 한다. 바로 불협화음이다. 이것은 소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소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화음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최인훈과 노회찬은 우리 사회의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풀어내면서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 해결은 멀어 보인다. 이 두 분이 한 일이 너무나 소중하고 필요한 시기인데. 이토록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나니 말이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우리 소설의 한 축이 되고, 세계 문학사에 남을 작품인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1961년 책으로 나왔다. 필자도 그해에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내 속에는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이라는 존재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분단국가에 태어나 남측도 북측도 가지 못하고 결국 중립국을 선택하는 전쟁포로 이명준. 그는 결국 거기에도 가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다. 이명준도 나이를 먹었으니 이제 오십 중반을 넘어섰다. 그의 마음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명준을 탄생시킨 작가는 결국 통일을 보지 못하고, 중립국과도 같은 다른 세계로 갔다. 얼마 전 남북 정상들의 만남을 병상에서 보고 그토록 기뻐하셨다고 하는데….

어쩌면 두 존재는 6411번 버스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고 있을 것이다. 노동자와 기업가가 서로 사랑하며,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여태 걸어보지 못한 길을 내는 하늘길이다. 오늘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이분들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우리들 가슴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사막과도 같은 우리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단비로 내리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때로는 비판받고 고통에 시달리던 두 사람의 몸이 사라지고 그들의 정신이 남았으니 우리가 갈 길은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노회찬의 구두, 고흐의 그림을 닮은 그 낡은 구두는 노동자들이 걸어온 길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 구두를 신고 갈 길을 살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새벽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정답이 있는 것인가? 서로가 이게 정답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문제 해결에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답만이 있을 뿐. 서로 다른 대답들이 모여 화음이 된다. 지난한 시대를 살면서 그 어려운 질문들에 대해 두 분이 행하고 말한 진실한 대답을 우리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원재훈(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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