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세환] 노인과 어르신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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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의령경찰서 관계자는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경북 의령의 한 60대 할아버지 얘기다. 그는 지난달 세 살짜리 외손자를 차에 두고 출근했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냥 깜빡했다고 한다. 외손자는 4시간가량 폭염 속에 방치돼 결국 숨졌다. 병원 치료를 마치면 그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외손자를 죽인 할아버지’라는 멍에가 평생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한 지인의 말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노인네가 뭐하러 나서서 비극을 만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집에서 그냥 쉬지.” 다른 지인은 “이래서 노인들 운전하는 걸 규제해야 돼.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른다니까”라고 했다. 딸과 사위가 바쁠 때마다 외손자의 어린이집 등원을 대신 도왔던 할아버지의 사연은 어느새 잊혀졌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노인의 무능함만 세간의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취재원과 대화를 나누다 놀란 적이 있다. 오랜 시간 시골 생활을 했던 그는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단 이야기를 꺼냈다. 수법은 이렇다. 안마도 해 주고, 서커스도 보여주고, 값비싼 식사도 무료로 대접한다. 이렇게 노인의 마음을 열고, 종국에는 수백만원 하는 의료기기를 팔아치운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르신들을 꼬드기는 게 문제”라고 하자 취재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도 알 건 다 알아요. 그냥 그들은 고마워서 돈을 내는 거예요”라고 했다.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연락도 없는 자녀 대신 말동무를 해 주는 사기단에게 기꺼이 속아 준다는 것이다. 노인은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편견이 어느새 나를 비롯한 젊은층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실제 노인의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보자. 버스에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친다. 해병대 복장으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외친다. 콜라텍과 다방을 전전하며 노년의 로맨스를 즐긴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면서 눈덩이 같은 적자를 유발한다….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현재 14.3%에 달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부양해야 할 짐으로만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노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어르신들이 더 존경받고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늙음을 전염성 질병처럼 취급하며 기피해온 사회는 여전하다. 노인들은 탑골공원으로 출근해 길거리에서 소주를 마시고, 행인들은 슬금슬금 그들을 피하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 세대 통합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우선 국가와 시민사회 차원에서 노인에 대한 편견과 이미지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 67세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9월 대학생들 앞에서 한 축사가 일견 해답일 수 있다. 그는 “꼰대의 잔소리 같겠지만 인사를 공손히 하고,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상대방을 최대한 높이라”고 조언했다. 내용이야 동서고금의 진리이자 진부할 수 있는 성공론 일진대 청중의 눈을 마주하며 진심을 전달하는 이 총리의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굳이 획기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도 좋겠다. 취업난에 방황하는 젊은이가 즐비한 지금, 그들의 삶과 행동에 귀감이 되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어른이 절실한 상황 아닌가. 훈계하듯 말고 귀 기울이며 차근차근 인생을 알려주는 방식이라면 노인의 연륜도 빛날 것 같다.

네덜란드의 ‘수리(repair) 카페’도 괜찮은 모델이다.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처음 생긴 수리 카페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동시에 각종 수리 도구도 갖추고 있다. 가구와 가전제품, 자전거 등 고장 난 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오면 은퇴한 엔지니어나 솜씨 있는 자원봉사자가 고쳐준다. 비용은 무료다. 이곳에서는 기술을 가진 노인과 젊은이의 대화가 활발히 이뤄진다. 물건에 얽힌 사연을 묻고 답하며 자연스럽게 세대 간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 무능한 노인이 아니라 배울 점이 있는 어르신으로서 기성 세대가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어버이연합 집회 취재를 나간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와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는데, 의외로 말이 잘 통해서 놀랐다. 자신이 나라에 기여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고, 오늘 할 일도 이것밖에 없어서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그들의 신념과 활력을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릴 방법은 없을까. 어쩌면 그들은 약간의 연금 인상보다 어른으로서 당당히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더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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