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실은 오토바이 고산준령을 깨우다

네팔 산간지역에서 티베트인 선교 10년째 허언약 선교사

복음 실은 오토바이 고산준령을 깨우다 기사의 사진
네팔에 있는 해발 3400m의 ‘낙달리’ 정상 전경. 허언약 선교사 부부는 이곳에 2016년 미션스쿨을 세웠다. 허언약 선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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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북쪽으로 80㎞ 떨어진 러수아 지역의 한 산간 마을. 허언약(42) 선교사는 티베트인들을 만나기 위해 매주 한두 차례 10시간 오토바이를 타고 해발 2000∼3000m 고지대를 달린다. 오토바이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산악 마을은 며칠씩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파한다. 한번 집을 나서면 가족이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로 바로 들어가기 힘들다. 티베트인들이 사는 20개 마을을 돌고 나면 보통 4∼5일이 걸린다.

허 선교사 부부는 10년째 네팔에 거주하는 티베트인을 상대로 사역하고 있다. 선교 보고차 잠시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 가족을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허 선교사는 2000년 한 해외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던 중 아내 박이레(42) 선교사를 만나 장기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곳에서 티베트라는 민족을 소개받았다. 이때부터 티베트를 품은 부부는 이 민족에 대해 공부했고 단기선교 등에 참여하다 2008년 티베트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우리나라가 6·25전쟁 중일 때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고 달라이 라마가 유엔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러나 유엔이 티베트가 아닌 한국을 돕기로 결정해 이들은 독립할 수 없었죠.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티베트인의 침략자였던 중국인은 그들에게 참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우리는 티베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티베트인들은 자연을 숭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힌두교와 토속신앙 등이 융합된 티베트불교를 믿고 있다. 종교심이 깊은 이들은 기독교 등으로 개종하면 공동체로부터 핍박을 받고 심지어 추방까지 당한다. 순교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핍박이 심하다.

선교사가 티베트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산간지역에서 사역해야 한다. 고지대이다 보니 고산병으로 고생하고 영적 싸움을 견뎌야 하는 등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특히 중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외국인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한다. 전도를 금지하는 중국의 철저한 보안도 선교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허 선교사는 티베트인의 친구가 되는 것이 사역의 시작이라고 봤다. 티베트인들은 수년째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들의 마을을 방문하는 허 선교사를 어느새 친구로 여기게 됐다. 음식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어려운 문제를 듣고 있다 보면 교제 시간이 훌쩍 지난다. 허 선교사는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타이레놀 등 비상약을 챙겨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마을을 방문하면서 안타깝게 죽은 이들도 여러 번 지켜봤다. 3년 전 한 마을에 도착하니 13세 아이가 고열로 갑자기 죽었다. 병원에 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손도 제대로 써 보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 선교사는 한 명의 영혼이라도 살리기 위해 늘 해열제와 연고 등을 가지고 다닌다. 어린아이들이 예방주사를 맞지 못해 소아마비와 급성뇌수막염 등에 걸리는 것도 봤다.

6개월 전엔 선교사 부부와 가깝게 지낸 한 자매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30㎏ 짐을 들고 3시간 동안 산길을 걷다 급성 저혈당 당뇨로 쓰러진 것이다. 병원 치료만 받아도 살 수 있었는데 남편이 미신을 믿어 병원에 보내지 않았다.

“이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병원에 가려면 3∼4시간 걸어야 하거든요.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 마을을 포기할 수 없거든요. 경북 포항이 고향이고 산을 싫어하는 저를 하나님은 자꾸 산으로 보내십니다. 그들과 함께하라고, 다음세대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교제한 지 4년이 되던 2012년 카트만두에서 느와곳으로 이사했다. 장시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은 고되고 외로운 일이었다. 느와곳은 카트만두보다 사역지인 러수아 지역에 조금 가깝지만 그래도 4∼5시간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이즈음 마을에 친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사역의 문이 점점 열렸다. 동네 이장과 친구가 됐는데, 교회가 세워지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다. 이장은 친구(허 선교사)가 교회를 세운다고 하니 흔쾌히 동의했고 마을 주민들도 동의하는 사인을 했다.

“복음은 서로 신뢰가 없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마을을 다니면서 티베트인들과 신뢰가 생겼어요. 티베트불교가 강한 지역에서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교회는 그 땅을 위해 기도하는 처소가 됐습니다.”

교회에 이어 학교도 기적적으로 세워졌다. 2016년 4월 해발 2600m의 한 지역에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미션스쿨을 세웠다. 교장은 인도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이고 박 선교사를 비롯해 크리스천 교사 6명과 스태프 4명 등이 헌신하고 있다. 학교를 세운 이유는 무엇보다 지역민들의 필요에 의해서다. 이 지역엔 교육기관이 전무해 유치원에 가려면 3∼4시간을 걸어야 한다.

“저희가 티베트인을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함께 사역하던 사람 중 네팔 사람을 학교 동역자로 세웠어요. 복음으로 변화된 크리스천 교사가 아이들을 믿음의 자녀로 양육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다음세대가 티베트를 복음화할 수 있는 씨앗입니다. 그래서 학교 사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최대 100명까지 받을 계획입니다. 10년 후 학교를 통해 마을이 복음화될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평신도 1호 선교사로 파송 받은 허 선교사 부부는 네 자녀 중 세 딸과 함께 느와곳에 거주하고 있다. 큰딸은 본가가 있는 경북 포항의 한동글로벌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지 학교에 다니며 네팔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세 딸은 부모의 사역을 돕고 있다.

“우리 가족을 만나는 사람마다 네팔에서 고생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즐겁게 사역하고 있어요(웃음). 티베트 변방에서 복음의 티베트인들로 성장하도록 돕고 티베트가 통일되면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그날을 기대합니다. 티베트의 부흥은 하나님께 맡기고 저의 역할은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큰일이 아니라도 그저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티베트인들을 안아주고 위로하는 사역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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