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패배] 패배, 아름다우면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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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 선수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팔을 들어 국민들의 환대에 답하고 있다. 그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MVP)을 수상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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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에서 승자와 패자는 분명하다. 특히 세계 정상을 가리는 결승전에선 승자도 패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눈물의 의미는 다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무대인 만큼 승자는 환희와 감동의 눈물, 패자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스포츠의 세계엔 또 다른 의미의 승자가 존재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후회 없이 다 던져 싸운, 졌지만 잘 싸운 멋진 패자 말이다. 사람들은 이럴 때 ‘패배’라고 쓰고 ‘승리’라고 읽는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우승을 차지했고(won the cup) 크로아티아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won our hearts).’ 러시아월드컵의 결승전을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이다.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에 2대 4로 패배했지만 사람들은 모든 걸 다 던져 싸운 그들에게 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과거의 내전으로 상처받은 조국을 가슴에 품고 훈련시설조차 변변치 않은 현실 속에서 모든 걸 다 던져 싸운 그들의 경기를 ‘패배’로 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보다 ‘잘 싸운 패배’에 환호한다. 그 이유는 절망이 끝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선을 다한 인생도 결코 패배한 인생이 아니다.

‘아름다운 패배’

현재 한국사회에는 강한 승리주의가 만연해 있다. 명문대에 들어가고, 남보다 먼저 취업하고, 좀 더 빨리 승진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기려 하는 자만 있고 지려고 하는 자는 없다. 이 대열에서 낙오되면 패자로 치부된다.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낸 한완상 박사는 승자 독식과 승리주의 가치가 예찬돼 온 한국사회에서 진짜 이기는 힘으로 ‘우아한 패배’를 제안한다. 그는 저서 ‘우아한 패배’에서 모두가 승리하려 한다면 우리 안의 악이 더욱 활개를 치게 되지만 우아한 패배를 선택하면 우리 안에 숨겨진 선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우아한 패배에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함께 이기는 상승’과 ‘함께하는 상생’이 이뤄지는 것이다. 무조건 이기고 투쟁하려 하기보다는 가진 자가 먼저 손을 내밀고 양보하고 멋지게 져주는 것이 진짜 이기는 힘의 원리란 것이다. 무력에 의한 압승은 항상 처절한 패배를 낳고 불타는 복수심을 키우지만, 자기를 비워 남에게 희망과 용기를 채워주는 사랑의 힘에 근거한 우아한 패배는 상승의 희열과 상생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우아하게 패배할 수 있는 그 용기의 힘은 자기 탐욕을 비워낼 수 있고, 자기의 독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랑의 힘에서 나온다. 이 사랑의 힘보다 더 진보적인 힘은 없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를, 그리고 역사와 미래를 모두 다 밝게, 더 활기차고 투명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패배와 복수의 악순환을 뛰어넘어 상생과 상승의 새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참 진보의 힘이기 때문이다.”(한완상의 ‘우아한 패배’ 중에서)

사랑보다 더 진보적인 힘은 없는 듯하다. 우아한 패배보다 강한 힘은 없는 듯하다. 누가 우아한 패배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바로 온정적 인간이다. 남을 향한 측은지심이 있을 때에 우아하게 패배할 수 있다. 온정적인 인간은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사람이다. 온정적인 인간이 이 사회의 리더가 될 때 평화가 찾아온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어노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누구나 실패할 때 절망한다. 치열한 경쟁과 노력을 했다면 실망은 더 크다. 그러나 실패가 끝이 아니다. 겉으로는 패배지만 승리가 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결국 승리였듯이 말이다. 예수님은 세속적인 유대인들에게 실패자의 모델이었다.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이 그토록 감동적인 것은 십자가를 지는 ‘패배’를 통해 부활의 ‘승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권력의 폭력 앞에 죽음을 선택했다. 그 힘은 폭력과 그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냈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전 미국 백악관 법률고문이었던 찰스 콜슨(1931∼2012)은 “하나님의 나라는 역설적이다. 십자가의 비참한 패배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이 더욱 영광을 받으시고, 실패를 통해 승리를 얻게 되고, 깨어짐으로 나음을 얻게 되고, 나를 잃어버림으로 나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혐의로 1974년 유죄선고를 받고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회심해 교도소선교회(Prison Fellowship)를 설립해 전 세계 재소자, 전과자, 범죄 희생자와 그 가족을 도왔다. 추락 후 회복을 경험한 인물이다.

최선을 다해 잘 싸운 경기에서 패배해도 환호를 받듯이 최선을 다한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지금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나중엔 승리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영적 지도자 리처드 로어는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추락과 몰락은 은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먼저 추락이 있다. 그다음에 추락으로부터의 회복이 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이다.”(리처드 로어의 ‘위쪽으로 떨어지다’ 중에서)

추락이 은총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방법을 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 중 ‘상실과 회복의 법칙’이 있다. 이와 함께 실패와 승리, 승리와 실패도 반복된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추락이 있으면 회복이 있다. 성경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가장 진보적인 힘은 ‘사랑’

미국 동부의 메이저 건축설계회사인 팀하스의 설립자 하형록 회장은 자기희생을 통해 ‘승리’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1991년 심실빈맥증으로 심장이식을 기다리다 옆 병실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심장을 양보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내린 이 결정은 이후 그의 전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매 순간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자신의 유익보다는 이웃의 유익을 선택했다.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그는 저서 ‘페이버(Favor)’에서 참 희생은 승리의 지름길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웃을 향한 희생은 언제나 나에게 풍성한 삶의 지혜와 내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고귀한 삶의 품격을 가져다주었다. 단순히 ‘남의 유익을 추구한 것이 결국 나의 유익을 가져왔다’는 말 그 이상이었다. … 나보다 더 큰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선택이 무엇인가만을 생각했다. 나는 언제든지 이웃을 위해 손해보고 희생할 수 있을 만큼 강하며 이웃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내 삶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며 하나님 안에서 나는 지극히 평안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페이버다. 이 모든 것은 한 여인에게 심장을 주었던 일에서 비롯되었다.”(하형록의 ‘페이버’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하고 승진하며 돈을 버는 것이 승리가 아니다. 남을 속이거나 비겁한 방법으로 얻은 승리로 인해서 타인이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승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악한 행동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최선을 다한 인생에 대해 하나님은 상급을 주실 것이다.

▒ 패배에 하나 더
성경이 말하는 승리 원칙 “하나님 뜻대로 행하라”


성경엔 실패했지만 성공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바울의 삶은 고난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음 직전에 바구니를 타고 성벽을 내려와 간신히 살아나고, 파선하는 배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독사에 물리고, 죄수가 돼 결박당하고 순교했다. 누가 봐도 실패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위대한 승리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승리이다. 바울은 회심한 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살았으며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순교했다. 사도 중 최초로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스라엘 밖으로 전파하는 데 영향을 미쳐 기독교를 세계 보편 종교로 성장시키는 토대를 마련했다.

성경은 승리의 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목회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미 이겨 놓으셨다며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승리하는 삶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해 봐야 할 때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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