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기울어진 세상 기사의 사진
부모님 댁의 에어컨이 고장 났다. 십 년을 썼으니 고장이 날 만도 하지만 내내 멀쩡하다가 하필이면 요즘 같을 때 고장이 날 건 뭐란 말인가.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에어컨 고장 신고가 폭주하고 있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서비스센터에선 닷새 뒤에나 기사님의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워낙 오래된 모델이어서 바로 부품을 구해 수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급한 마음에 새로 사려고도 했지만, 설치까지 3∼4주는 기다려야 한다는 공고를 보곤 그마저 포기했다. 하는 수 없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빠와 엄마는 내 집으로 오셨고, 올케와 조카들은 올케의 친정으로 갔다. 직장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동생만 냉방이 안 되는 집에 남았다.

이제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기 힘든 환경이 되어버렸다. 대통령도 폭염을 특별재난 수준으로 인식해 대책을 세워 달라고 국무위원들에게 주문했다고 하니, 이 믿기지 않는 더위가 재난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웠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더울 거라는 소리를 듣다 보면 이 여름이 정말 끝나긴 끝날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해마다 혹한과 폭염은 기세를 더하고 있고 기후 재난으로 인한 양극화 현상 역시 심화하고 있다. 이런 폭염에도 에어컨은커녕 변변한 그늘조차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두세 평 쪽방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또 어떤가. 그들에게 이 더위와의 싸움은 말 그대로 사투이리라. 혹한과 폭염이 기승일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다뤄지는 쪽방촌 거주민들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올해의 기사와 작년, 재작년의 기사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수많은 기사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환경은 세월의 흐름만큼 나빠진 듯 보였다. 사람들은 매년 더위와 추위를 견디다 못해 병들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걱정하지만, 더위가 가시고 추위가 물러간 뒤에는 그들을 잊는 게 틀림없었다. 세상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온풍기와 에어컨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황시운(소설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