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좌담] 신사참배 결의 80주년, 한국교회 회개운동 시작하자

신앙 선배들은 신사참배에 버티다 버티다 무너졌지만…지금 우리는 유혹에 너무 쉽게 무릎 꿇는 게 아닌지

[특별 좌담] 신사참배 결의 80주년, 한국교회 회개운동 시작하자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80년 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예장)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의 일환인 신사참배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치욕적인 결의였던 만큼 전후의 갈등도 컸다. 이를 거부하다 기독교인 수천 명이 투옥되고 교회와 기독교 사학 수백 곳이 폐쇄됐다. 순교자도 발생했다. 선교사들은 선교부를 자진 폐쇄하거나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신앙의 양심을 지켰던 신앙 선배들의 정신을 한국교회는 얼마나 잘 계승하고 있을까. 다시는 이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국민일보와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신사참배 결의 80주년, 한국교회 회개운동 시작하자’는 주제로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손인웅(한국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장, 덕수교회 원로) 이영훈(여의도순복음교회)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윤보환(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대표회장, 인천 영광교회 목사)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감독이 참석했다.

<참석자>
△손인웅 목사 (한국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장, 덕수교회 원로)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윤보환 감독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대표회장, 인천 영광교회 목사)

-80년 전의 신사참배 결의가 이 시대 한국교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손인웅 목사=
1930년대 말 일제는 집요하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마지막 목표가 교회와 기독교 사학이었다. 이들만 굴복시키면 제국주의 확산에 큰 무기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었다. 일제는 실제로 예장의 신사참배 결의를 군국주의 확산을 위해 효과적인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표면적으로 일제는 국민의례라고 선전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명백한 종교행위였다. 실제로 순교자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목숨을 잃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킨 것이다. 신사참배의 부끄러운 역사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선배들의 순교정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윤보환 감독=맞다.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 시대가 본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대대적인 회개운동이 필요하다. 늘 ‘1938910’이란 숫자를 기억하고 있다. 바로 신사참배 결의가 있었던 예장 27회 총회가 열린 1938년 9월 10일을 의미한다. 당시 총대들은 10일 결의한 뒤 평양신사를 찾아가 단체로 고개를 숙였다. 신사참배 후 한국교회는 찬반이 갈려 많은 갈등을 겪었다. 뒤이어 해방이 찾아왔지만 한국전쟁으로 한겨레가 피를 흘려야 했다. 현재 한국교회는 영적인 어려움에 빠져 있다. 이단의 공격에도 시달리고 있다. 회개의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이영훈 목사=무척 가슴 아픈 역사다. 당시 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우를 범했다. 윤 감독의 말씀처럼 당시 죄를 후배들이 회개해야 한다. 모든 교단이 참여해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삶이 변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교권주의나 물량주의, 영적 지도력이 상실되는 것 등을 말한다.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올 9월을 기점으로 각 교단이 회개운동을 시작하자. 간절한 회개를 통해 재부흥의 전환점을 만들자. 간절히 소망하는 부분이다. 과거 신사참배에 대해 형식적으로 회개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대각성 회개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소강석 목사=신사참배를 결의했던 당시의 혼란을 생각해 본다. 역사의 수치이지만 신사참배를 두고 찬반으로 대립했던 선배들의 고민이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도 남아있는지 묻고 싶다. 많은 목사들이 저항했다. 선교사들은 결국 학교를 폐교하고 본국으로 귀국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목사들 앞에도 각양각색의 유혹이 있다. 회개운동과 함께 우리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내 죄”라고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회개는 필요 없다.

-삶과 괴리되지 않는 ‘진정한 회개운동’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소 목사=유대인의 사상 가운데 ‘집합적 인격체’라는 개념이 있다. 한 세대로 보이지만 그 세대 안에는 여러 세대가 공존하며 혼재돼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널 때 집합적 인격체 사상으로 보면 죽은 아브라함도 함께 홍해를 건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조상이 죄를 지으면 후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윤 목사가 제안한 회개운동은 집합적 인격체 사상으로 보면 바로 우리의 당면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신사참배 결의 80년을 맞아 회개하고 모든 조상의 죄를 청산해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맞이하자. 물론 조상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의 죄가 지금 우리의 죄다. 우리가 회개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목사=국민일보가 지난해부터 진행하는 ‘나부터 캠페인’이 있는데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신사참배를 한 선배들의 죄만 회개할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나부터 회개’하자는 운동으로 확산되면 좋겠다. 신앙의 문제는 타협할 수 없다. 이런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한국교회가 통일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이런 회개운동은 몇몇 교회나 단체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가 나부터 회개하고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참여해야 한다.

△손 목사=현대적 의미의 우상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나의 허물을 볼 수 있다. 무엇을 회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현재를 살아가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분명히 답해야 한다. 과거 수많은 회개운동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국교회는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회개가 변화로 이어지지 못해서였다. ‘회개의 열매’를 찾아야 한다. 소 목사도 말했지만 ‘보여주기식 회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성경에 ‘귀신의 비유’가 나온다. 귀신 하나를 쫓아냈더니 열이 들어오지 않았나. 이런 식의 회개가 돼선 안 된다. 다시 말해 한 가지를 회개하고 열 가지의 교만함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신사참배를 한 선배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엄청난 우상숭배를 결정한 게 아니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유혹 앞에 너무 쉽게 무릎 꿇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돌아보라. 회개에 앞서 진실로 회개할 것인지 용기를 내야 한다. 이런 용기가 없는 회개는 이벤트다. 회개는 많이 할수록 좋다. 하지만 열매 없는 회개는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안 믿는 사람들이 웃는다. 그건 곤란하다.

-‘보여주기식 회개’를 피하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소 목사=복음에 합당한 회개를 해야 한다. 제대로 된 회개는 한국교회에 큰 열매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스스로 ‘민족의 제단 위에 드려지는 속죄의 제물’이 되자. 시간을 관통하는 통시적이고 영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우리의 공명심으로 하는 회개여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내 죄고 나의 허물이라는 자성이 출발점이다.

△이 목사=‘회개의 열매’라는 지적에 무척 공감한다. 열매 없는 회개는 의미 없다. 구체적으로 한국교회가 당면한 교권주의나 물량주의 권력에 아부하고 돈을 따라가는 우상들을 걷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통렬한 회개를 해야 한다. 신사참배 80주년이 한국교회에 이 같은 유익을 주길 소망한다.

△윤 감독=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결국 우상숭배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특별한 복을 받은 나라다. 엄청난 부흥과 강한 영적 성장, 새벽기도 등 모든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족하면 안 된다. 우린 안타깝게도 그 거룩함을 몰살시킨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를 한 일이 있다. 바로 올해 ‘회개의 열매’를 맺는 진정한 회개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신사참배 80주년이 된 바로 올해 한국교회가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선교한국과 민족복음화, 복음통일의 역사를 주실 것을 확신한다. 한국교회에 요청 드리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각 교단이 신사참배 결의는 무효라고 다시 선포하자. 한국교회 100만 교인이 참여하는 신사참배 회개 기도회를 진행하자. 이런 회개의 역량이 복음통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 한국교회의 저력이 발휘될 수 있는 토대는 결국 기도요 회개다. 이를 통해 영적인 변곡점을 만들어야 한다. 1938년의 ‘영적 국치일’을 80년 지난 올해 ‘영적 회복일’로 변화시키는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