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휴일 없이 ‘막노동 무임금’… 그곳은 지옥이었다

[피지 탈출 피해자가 밝힌 신옥주집단의 실체] <상> 이단에 속아 머나먼 피지로

[단독] 휴일 없이 ‘막노동 무임금’… 그곳은 지옥이었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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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가명)씨는 2015년 경기도 과천 은혜로교회 신옥주씨에게 속아 남태평양섬 피지에 들어갔다 2년 만에 가족과 함께 탈출했다. 이들에게 관광 ‘천국’ 피지는 ‘지옥’이었다. 사이비 종교 때문에 망가진 한 가정의 이야기와 지금도 피지 내 신옥주집단 신도 410여명이 겪고 있을 일상을 3차례 보도한다.

“아, 글쎄 말씀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여자 목사님이 계신다니까.” “누군데요.” “신옥주 목사님이라고 유튜브로 검색해 봐.”

2013년 친척이 걸어온 전화 한 통이 김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10년 넘게 다닌 지방의 A장로교회에선 듣지 못했던 내용이 많았다.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여보, 비유풀이로 말씀을 푸는데 성경이 정말 딱딱 들어맞네. 우리 은혜로교회 나갈까.” “그래요.” 아내도 흔쾌히 수락했다.

은혜로교회는 과천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대전 전주에도 있었다. 김씨가 다닌 대전교회는 신씨의 동영상 설교를 매번 틀어줬다. 신씨는 강단에서 대기근이 다가온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피지가 환난 날에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도피처라고 강조했다.

지방에 있던 신도들이 재산을 팔고 과천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씨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사업을 정리하고 2014년 과천 주암동에 월세방을 얻었다. 신씨의 지시가 떨어지면 곧바로 피지로 향할 생각이었다.

2015년 2월 피지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피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피지는 환난 날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면적이 경상북도와 비슷한 피지는 뻘 위에 화산재가 덮인 지형 구조였다. 땅에 파이프를 박으면 쑥쑥 들어갔다. 포클레인으로 1m만 파도 뻘이 나왔다. 여름은 37도, 겨울은 23도였다. 1년 내내 한국의 여름 날씨이다 보니 잡초가 어른 키만큼 자랐다. 벼농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게 뭐지. 신 목사님이 분명 마지막 날 피할 곳이라고 했는데….’

초창기만 해도 종말이 온다는 기대감에 고된 노동을 이겨냈다. 하지만 피지에 들어오는 신도가 점점 늘어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팀장에게 팀원들의 얼굴빛까지 감시해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430만㎡(130만평) 넘는 땅을 130여명이 관리하다 보니 하루 15시간 노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후 10시 일을 마치고 남자 숙소에 돌아오면 신씨의 설교 동영상을 2시간 넘게 봐야 했다. 몸이 너무 피곤해 샤워도 하지 않고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기상시간은 오전 5시30분이었고 1년 내내 공휴일도 휴가도 없었다.

여성들은 신옥주집단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그레이스로드 키친, 아이러브 스시)과 치킨집(그레이스로드 치킨), 햄버거 가게(퓨어그린), 피자집(서니피자), 화장품 판매점, 미용실 등에서 일했다. 수바와 나디, 라우토카 등지에 개설한 상점만 60여개다. 노동의 대가는 하나도 없었다.

신씨는 신도들의 고된 노동이 자신의 죗값을 치르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몸을 던져 산제사를 드려야 한다”며 무임금 노동을 합리화했다. 불만이 쌓여갔지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순 없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표정이 어두워지면 곧바로 ‘타작마당’을 당했기 때문이다. 타작마당은 신도 2∼10명이 특정 신도를 집단 구타하는 행위를 말한다.

‘퍽, 퍽, 퍽’ 매질 소리와 함께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터져 나올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절대 저렇게 당하지 말아야지. 이곳에서 반드시 살아나가야 한다.’

김씨는 다행히 농업기술을 인정받아 일반 신도와 달리 트럭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여권은 교회 지도부가 보안상 관리하겠다며 일괄 수거한 상태였다. 2017년 5월 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피지 한국대사관에 들어갔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결국 그는 임시여행증을 발급받아 ‘지옥’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일 만난 김씨는 경찰이 지급한 ‘SOS 팔찌’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신옥주집단의 테러 등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팔찌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자동 신고가 된다.

과거 정통교회에서 생활했던 그에게 ‘다시 건강한 교회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교회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합니다. 종교라는 생각 자체를 하기 싫습니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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