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3> 6·25전쟁 터져 북한군 군의관으로 끌려가

꿈에서조차 북한군에 협력 생각 안 해, 맥아더 장군 인천상륙… 탈출 기회 엿봐

[역경의 열매] 김선도 <3> 6·25전쟁 터져 북한군 군의관으로 끌려가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의 고향인 평북 선천에 1910년 세워진 선천 남교회. 국민일보DB
월남을 결심하고 남쪽으로 넘어가기 쉬운 아래 지방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남한과 가까운 해주의학전문학교가 있었다. 곧바로 전학을 했다. 그러나 해주라고 해서 공산주의의 광풍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었다.

병원 실습을 나갔는데 장로의 딸이 폐렴으로 입원해 있었다. 평소엔 환자들에게 속으로 기도해 줬는데, 장로 딸이라고 하니 그날은 소리를 내서 기도했다. 그런데 이걸 병원 직원이 발견했고 곧바로 윗선에 고발했다. 상급자들의 호된 질책이 이어졌다. “아니 김선도는 의학도라고 하면서 어찌 미신적인 기도를 했는가. 의학도가 주사 놓고 약만 처방하면 되지. 무슨 이유로 기도 따위를 했단 말인가.”

또다시 반동분자로 몰리면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선 환자에게 기도해 주는 정성 하나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건조하고 메말랐다. 그때 번쩍 든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의학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체제가 변화되지 않는 이상 학문도 오염될 수밖에 없다. 월남만이 답이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북한군의 징집이 시작됐다. 집집마다 군인들이 징집장을 전했다. 내 마음은 이미 신앙의 자유를 따라 남쪽에 가 있었기에 절대로 북한군에 편입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군인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징집됐다. 끝까지 눈에 띄지 않고 버티면 저 무신론의 대열, 살인의 대열에 섞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저를 숨겨주시옵소서. 주의 깃으로 덮으사 저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결국은 걸리고 말았다. 나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북한군의 눈에 띈 것이다. 멍에에 매여 끌려가는 소처럼 북한군 진영으로 질질 끌려갔다. “오 하나님, 저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들은 내게 북한군 군의관 장교 배지를 달아줬다. 군의관복을 입고 청진기와 알코올, 밴드, 테이프가 들어있는 손가방을 멨다.

내가 속한 부대는 평양 아래 황주와 흑교 사이에 있는 산속 벙커로 들어갔다. 평양을 지키는 일종의 수도사령부 같은 곳이었다. 나의 머릿속은 온통 탈출 생각뿐이었다. ‘가족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미 월남했을 텐데… 이 삭막한 곳에 나 혼자 남는 게 아닐까.’ 고독감이 밀려왔다.

몸이 결박당해 피해갈 수 없는 현실에서 정신만은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싶었다. 무신론의 대열에서 내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행위는 진료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며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어쩌면 이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사상에 동의해서 자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저들도 공감할 수 없는 이 구속에서 꾀병으로라도 위로받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지하 벙커에서 참모회의가 열렸다.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큰일 났다.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했다. 전투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오, 하나님.’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내 눈에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후 우리 부대는 평양으로 옮겼다. 야간 행군을 하는데, 황주 쪽에서 북한군이 소리를 지르며 올라왔다. 패잔병이었다. 군대라고 볼 수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그저 살고 싶다는 본능만 남은 무리였다. 부대가 잠시 술렁였다. 패잔병의 무리를 보며 다들 엄습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나는 꿈에서조차 북한군에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 기회를 놓쳐선 안 돼.’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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