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연명의료 거부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3주 씌운 병원 기사의 사진
암 환자가 지난 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말기나 임종기 상황이 되면 환자 자신의 의사 혹은 가족의 의사 추정 및 대리 결정으로 혈액투석을 중단할 수 있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폐암 말기인 최모(78)씨는 지난 5월 중순 기관지에 관을 꽂은 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구급차로 이송된 최씨의 의식은 없었다. 그는 10년 전 편도선암을 진단받았고 지난 1월 이와 별개의 폐암이 발견됐다. 암이 이미 뼈와 간으로 퍼져 항암치료만 받기로 했다. 거동이 점차 힘들어지자 치료받지 않는 기간에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간병을 받고 있었다. 3차 항암치료 뒤 요양병원에서 폐렴 의심 소견을 받았고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의식이 저하되고 산소포화도가 뚝 떨어졌다. 맥박도 거의 만져지지 않게 되자 요양병원 당직 의사는 연명의료인 심폐소생술(CPR)을 15분간 하고 기관지삽관을 했다. 하지만 인공호흡기가 없는 요양병원에서는 더 이상 대처가 힘들었다. 그래서 구급차를 불러 서울대병원으로 급히 전원시킨 것이다. 최씨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거기서 3주간 인공호흡기를 꼈다.

문제는 최씨의 경우 올해 초 폐암 진단 직후 의식이 있었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를 썼다는 점이다. 말기나 임종 과정에 접어들면 CPR이나 인공호흡기, 항암치료 같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 자신이 직접 서명한 AD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망에 등록됐다.

최씨는 임종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중단하고 편안히 임종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3주간 고통 속에 연명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힌 AD를 작성해 뒀다고 자녀들이 요양병원 당직 의사에게 구두로 전했으나 의사는 임종기임에도 CPR과 기관지삽관을 했다. 당직 의사가 일하는 요양병원에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지 않아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망에 등록된 최씨의 AD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AD 등 연명의료결정 관련 문서는 의료기관윤리위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만 확인 가능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해당 요양병원의 경우 임종기 판단이나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할 법적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의료진은 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으려 CPR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환자가 법정 서식을 작성해 뒀음에도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먼저 이미 끼워진 인공호흡기를 떼자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환자 가족이 적극적으로 인공호흡기 중단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로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연명의료결정 대상 환자임에도 가족들이 미온적이자 서울대병원은 의료기관윤리위를 열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환자 가족의 협조 없이 강제로 집행할 방법이 없었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지난 4일로 꼭 6개월이 됐지만 의료 현장은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자 만든 법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6일 “최씨 사례는 현 연명의료결정법의 맹점을 잘 보여준다”면서 “법의 핵심 가치인 존엄한 임종을 위한 자기결정권은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법이 현실과 괴리돼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황”이라거나 심지어 “사문화됐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4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지난 3일까지 실제 이행된 연명의료결정(중단 및 유보) 건수는 1만4787건이었다. 이 가운데 환자가 의식 있을 때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뜻을 미리 밝혀놓는 AD를 통해 이뤄진 건 0.7%(102건)에 불과했다.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에 따른 건 34.0%(5027건)였다. 환자의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가족 의사 추정)에 따른 건 28.7%(4241건), 그마저도 안돼 가족 전원의 합의(대리 결정)에 의한 건 36.6%(5417건)였다. 다시 말해 전체의 65.3%는 환자 자신이 아닌, 가족에 의해 무의미한 연명의료 여부가 결정된 셈이다.

의료계에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입법 취지는 좋지만 하부 법령(시행령 및 규칙)이 너무 까다로워 일선 현장에서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임종 직전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요구하는 나라도 없다. 허대석 교수는 “임종기에 접어들면 환자 대부분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숨이 헐떡헐떡 넘어가는 사람한테 연명의료를 할지 말지 물어보고 서명 받도록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가족이 대리로 서명할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못 박아 놓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자의 경우 자녀와 손주까지 합쳐 동의 받아야 할 가족이 십수 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이나 유보 의사를 본인이 정확히 밝혀 그에 따르는 사례는 현실적으로 10∼20%밖에 안 된다. 80∼90%는 가족이 연명의료확인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했다. 허 교수가 2016년 통계 기준 국내 사망자 28만여명 가운데 연명의료결정 대상에 해당하는 21만∼22만명을 분석한 결과 17만∼18만명이 이처럼 가족 추정이나 대리 결정의 형태로 이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경우 현행 법·제도상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준비할 서류도 많다. 국내의 경우 연명의료결정을 위해 갖춰야 할 서류가 모두 5∼6가지나 된다. 환자의사(意思)확인서(AD나 POLST), 의사의 임종과정판단서, 가족진술서, 가족의사확인서, 가족관계증명서까지 포함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POLST와 AD, DNR(Do Not Resuscitate·심폐소생술 거부) 양식 가운데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허 교수는 “대형병원에선 그나마 법이 지켜지고 있지만 요양병원 같은 중·소규모 의료기관에선 법을 못 지키거나 안 지키고 있는 실정”이라며 “요양병원에선 법적 분쟁 소지가 있을 것 같으면 환자를 대형병원으로 보내 버린다”고 말했다. 또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DNR 서식에 따라 기존 관행대로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의료계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일까.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따른 의료기관들의 참여와 협조는 저조한 편이다. 연명의료결정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인 의료기관윤리위를 설치·등록한 곳은 지난 3일 기준 159개(의원급 2곳 포함)였다. 병원급 이상 대상 의료기관(3337개)의 4.7%(157개)에 불과했다. 상급종합병원은 42곳으로 모두 100% 등록했지만 종합병원 28.8%, 병원 0.4%, 요양병원 1.4%에 그쳤다. 생명윤리정책원 관계자는 “중환자실을 갖춘 의료기관은 모두 의료기관윤리위를 등록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만 했다.

요양병원 등 인력 부족이나 재정 여건 때문에 의료기관윤리위 직접 설치가 어려운 의료기관은 지난 5월 24일부터 지정 공용윤리위(전국 8개 의료기관)를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실제 활용 사례는 아직 단 한 건도 없다.

허 교수는 “위탁하려면 400만원의 보증금과 심사 건당 30만원씩 내야 하는데 어느 요양병원이 이용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또 의료기관윤리위 설치가 안 된 요양병원 등의 의사에게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전산망을 열람할 권한조차 주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허 교수는 “앞서 최씨 사례에서 AD를 쓴 사실을 요양병원 의사가 그 당시 확인했더라면 CPR 시행에 대해 가족과 논의하는 등 신중을 기했을 것”이라면서 “연명의료는 유보 단계에서 결정해야지, 이미 시행한 상황에서 중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법·제도가 완화되면 오·남용이나 생명경시를 우려하는 일부 시각도 있다. 허 교수는 “이미 임종 직전 의식 잃은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결정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도 오·남용 문제가 발생한 적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의료 현장의 혼란 속에서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은 존엄한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빼앗기는 환자들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환자가 직접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고 가족들이 자연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의료진이 돕는 문화와 환경이 정착돼야 하는데 복잡한 절차나 낮은 의료수가 등에 대한 의료계 불만이 커 죽음이 편의주의적으로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윤선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은 “행정편의적이 아닌, 환자 이익(자기결정권)을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국회는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가족 추정이나 전원 합의 시 필요한 가족 범위를 ‘배우자와 1촌 이내 직계 존·비속’(해당자 없을 시 2촌 이내 직계 존·비속, 이 또한 없으면 형제·자매)으로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