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4> “너는 어떻게 할래? 나는 국군한테 간다”

국군이 평양 점령, 드디어 기회가…연락병 “군의관님을 따르겠습니다”

[역경의 열매] 김선도 <4> “너는 어떻게 할래? 나는 국군한테 간다” 기사의 사진
미군이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때 생포한 북한군 포로를 검색하고 있다. 당시 북한군 군의관이었던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월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가기록원 제공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우리 부대가 전투에서 패한 것이다. 환자를 챙기는 척하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그때 나를 호위하는 연락병이 있었다. 부대에서 일탈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내 옆에 붙어 있었다. 갓 스물이나 됐을까 싶은 순하고 깡마른 청년이었다. 사전에 내 사복을 늘 갖고 다니도록 해 놨다. “너, 내 사복 꼭 가지고 다녀야 해.” “네.”

한 가지 걱정은 이 친구가 기관단총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저 친구가 내게 총을 난사한다면.’ 마음 한편에서 두려움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탈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기회가 한 번은 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나는 6·25전쟁 동안 총을 한 번도 쏴 본 적이 없다.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남과 북을 향해서 총을 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만일 내가 총을 쏘았고, 그 총탄이 누군가의 몸을 관통이라도 했다면 그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이 북한군 청년에게 말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디를 가는 거냐고, 부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질문도 없었다. 묵묵히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오다 보니 평양 순안 비행장까지 가게 됐다.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을 뒤덮은 수천 개의 낙하산이 비행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유엔군 낙하산 부대였다.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와아, 온 하늘이 낙하산 천지구나. 대단하다. 이거 완전히 북한군이 포위를 당했구나. 뚫고 나가야 해. 그럼 자유를 얻을 수 있어.”

나는 계속 내려갔다.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릴 정도였다. 온몸에 털들이 바짝 곤두섰다. 생과 사가 결판나는 순간이 닥치니 내 온 신경이 쭈뼛쭈뼛 칼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생사기로의 순간 앞에서 아무리 예민해진다 하더라도 그 신경에 내 운명을 맡길 수는 없었다. 무엇이든 붙잡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밤중에 내려가다가 소나무를 끌어안았다. 무엇이라도 의지하고 싶은 절박함 때문에 소나무를 발견하자 안기기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내가 그렇게 오래도록 습관처럼 토로하던 분의 이름을 한을 풀듯 내 입에서 쏟아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저를 살려 주시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오로지 이 말만이 나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밤새 그 소나무를 붙잡고 매달려 부르짖었다. 차츰 마음이 안정됐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올라왔다. ‘아, 나의 이 어두운 생의 순간에도 먼동이 터오기를….’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새벽이 됐다. 북한군은 이미 다 후퇴했고 국군이 유엔군보다 앞서 평양을 점령한 상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1사단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이었다.

‘때가 왔구나. 이제 나의 계획을 저 연락병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저 녀석이 기관단총으로 나를 쏘면 죽는 거고, 아니면 사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고 사병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어떻게 할래? 나는 국군한테 내려간다.” 순간, 그 사병의 눈을 잊지 못한다.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하느냐는 순진한 눈빛이었다. 나 혼자 지레 겁먹고 있었던 것이다. “군의관님을 따르겠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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