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플라스틱 복수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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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화를 퍼붓는 것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던지는 것과 같다. 분노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과 공통점이 있다. 분노는 한번 마음에 던져지면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강력한 주범이다. 지속적인 부모의 분노는 자녀들이 마음의 병을 앓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자연을 훼손하면 재해로 돌아오는 것처럼, 자녀에게 준 분노는 부모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분노는 한 세대에서 두 세대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라스틱의 복수’처럼 무서운 이야기다.

자수성가한 50대 후반의 고위 공무원 A씨는 분노의 감정이 대물림된 사례다. 열아홉 살 큰아들은 게임중독으로 인한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열일곱 살 작은아들은 은둔형 외톨이로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행복을 꿈꾸며 결혼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고민 끝에 상담실을 찾았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부모는 하루가 멀다 하며 싸웠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가 집을 나갔을 때의 공포와 불안은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는 상담가의 조언대로 화가 날 때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다. 소름 끼친다.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분을 참지 못하는 자신을 보았다. 그는 상담가의 요청으로 한 교회에 등록하고 심리치료를 받았다.

6개월 후 큰아들은 조금씩 좋아져 한 달에 하루 정도 집에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이 “엄마 밥 줘요. 친구들은 이제 대학생이에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A씨는 1년 휴직하고 아들을 학원에 등하원시켰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 대신 시장을 보고 아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줬다. 자신의 폭언과 폭력에 아들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관계가 차츰 회복됐다. 형이 달라지자 작은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아빠 나 대안학교 보내줘요”라고 했다. 현재 큰아들은 2년제 대학 제빵학과를 졸업해 제과제빵사가 됐고, 작은아들은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됐다.

내가 던진 분노의 플라스틱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분노를 자연 증발시켜야 한다. 화낼 때 거울을 보자.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흉한지 알수 있다. 화가 나는 순간 자리를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피할 수 없다면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6초면 화난 감정이 사그라지고 3분이면 화난 순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화가 난 일을 글로 쓰면 분노가 조금은 해소되며, 쓴 글을 읽으면 많이 사라진다. 나만의 즐거운 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는 것도 좋다.

세상엔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사람도 있다. 아버지의 사랑은 인생의 기초공사와 같다. 이 기초공사가 잘못되면 병든 자아상, 부정적인 결혼관 등을 가질 수 있다. 아버지의 존재는 단순히 자녀에게 교육비를 대주는 경제적 후원자가 아니라 자녀의 정신적 도덕적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돌아온 탕자’(눅 15:11∼32)에 등장하는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만일 탕자의 가정이 매일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이었다면, 아버지가 아들의 가출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면 아마 탕자는 집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를 만난 자녀를 다시 일으키고 가정으로 돌아오게 한 위대한 힘이 아버지에게 있었다.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는 용서였다. 아버지의 용서는 언제나 절망으로부터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된다.

성경의 ‘측은히 여기다’(눅 15:20)는 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사랑이야말로 자녀의 인격을 성숙시킨다. 아버지가 사랑을 경험시켜주지 않으면 어머니의 사랑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세상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자아상을 만든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녀 인생에 기초공사를 잘 닦아놓았을 때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이 그 위에 건축된다.

자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기 다른 덕목을 배우고 자란다. 아버지에게서는 도덕적 의식과 현실을 이기는 힘, 규율을 배운다. 어머니에게서는 감성적인 측면과 사랑을 배운다.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은 자녀를 ‘세우는 일’이다. 자녀를 올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삶에서 어떤 직업상의 경력보다도 더 소중하다.

종교2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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