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타는 양심을 노래합니다

위안부 할머니 위로곡 만든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의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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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씨가 9일 오후 경기도 구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사죄를 드린다”고 했다. 구리=송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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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3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일본인들도 한국을 그렇게 생각할까. 일본인이지만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57·畑秀司)씨는 광복절을 1주일가량 앞둔 9일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타씨는 ‘위안부 할머니 위로곡’으로 알려진 ‘꽃보라 되어(花吹雪になって)’를 만든 작곡가다.

“고백합니다/TV뉴스와 신문기사를 통해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중략)/저는 너무나 미안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오래도록 위로의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하지만 이제 더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후략).”

대표적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있는 ‘꽃보라되어’의 내레이션 중 일부다. 탱고풍의 기타 리듬에 일본어와 한국어 자막이 같이 흐르는 이 곡은 “부디 이 노래가 그 옛날 소녀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하타씨는 기타 연주 및 내레이션도 맡았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꽃잎에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빗대 ‘꽃보라’란 말도 만들었다.

경기도 구리의 한 카페에서 하타씨를 만났다. 그는 “3년 전 이 곡을 발표하고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모른다”며 말문을 열었다.

“당시 일본에서 친형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친형이 조언하기를 절대 다른 데 가서는 이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선 민감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우익단체의 분위기를 보면 무섭기도 했고요.”

아니나 다를까. 곡이 발표되고 극우 성향 일본인들로부터 엄청 욕을 먹었다. 일본에서의 활동에도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곡을 발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양심에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다. 페이스북에 “응원한다”는 댓글을 남긴 일본인도 점점 늘어갔다. 그는 음악을 통해 한·일 양국의 화해와 상처 치유를 위해 가이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으로서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사과는 진실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일본 정부 및 교육계는 모든 사람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입니다. 당한 사람이 있는데 사과하는 게 맞습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진실 된 사과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하타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최근 충무공 이순신과 한산도를 담은 ‘바다 위의 이슬’이란 앨범도 발매했다.

“…내 앞의 나라 그 꿈에서 자유케 하라/작은 돌들 위에 바다의 이슬 맺힌 한산엔/지금도 그대 마음 그대로 품은 동백꽃 향 가득하네(후략).”

하타씨의 멋진 기타 솔로연주가 지나고 나면 애틋한 목소리로 밴드 ‘알에스프레소’의 보컬 모정길씨가 인간 이순신을 노래한다.

“양심의 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용기 있는 일본인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일본인들이 가해자로서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이웃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두 나라가 서로 좋은 친구가 되길 희망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감성이 어우러진 기타리스트’라는 평을 듣고 있는 하타씨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1988년 3월 한국에 놀러왔다가 친절하고 솔직한 한국인 여성 임현주(52)씨를 만났다. 첫눈에 반해 프러포즈를 했고 7개월 만에 결혼해 2남 2녀를 둔 가장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복음을 접했다.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읽으며 자연스레 믿음이 성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처음 기타라는 악기에 관심을 가졌다. 용돈을 모아 기타와 앰프를 샀다. 교회학교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을 불렀다. 기타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선 밴드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음악이고 기타를 연주할 때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게 당연하죠. 하나님이 허락하신 달란트로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연주할 것입니다.”

38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국 기타리스트가 됐다. 어릴 적 꿈을 이룬 것이다. 뉴미디어 음악으로 음악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유튜브 기타 신동’으로 유명해진 정성하군을 3년간 지도하기도 했다. 여러 대학에 출강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구리시 홍보대사와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이사, 한국새생명복지재단 홍보대사 등도 맡고 있다.

그는 기타 솔로와 듀오, 밴드 등 다양한 형태로 활동 중이다. 일본은 공연이나 일이 있을 때만 방문한다. ‘반일’ 인사로 분류돼 일본 일이 가끔 무산되기도 한다.

그는 한·일 교류와 관련해 “역사문제 등 민감한 사항은 걸림돌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교류는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거리상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금실 좋은 우리 부부도 사실 정반대의 성격입니다. 그렇지만 화합해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하타씨의 말에 옆에 있던 아내도 활짝 웃으며 얘기했다. “남편을 믿습니다. 다른 주부들과 만나면 보통 화젯거리가 ‘남편 흉보기’인데, 전 그때마다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남편은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음악활동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거든요. 실망시킨 적이 없어요.”



하타씨는 자녀들에게 교회 다니며 깨달은 신실함을 가르친다. 자신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제 평소 신조가 ‘음악인이기 전에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올바르지 못한 음악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좋지 않는 방향으로 오도하는 음악입니다. 저는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사랑과 행복, 감동을 주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구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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