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恨과 치유…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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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의 날’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못다 핀 꽃’은 저자 이경신(50)이 김 할머니의 증언을 신문에서 읽는 데서 시작된다. 미대를 다니는 그는 이때 위안부란 말을 처음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저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머물던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책은 93년부터 97년까지 5년간 할머니들과 함께 했던 미술수업 얘기다. 우리가 자주 본 위안부 피해 고발 그림 대다수가 이 수업에서 나왔다. 벚꽃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벌거벗은 소녀가 얼굴을 가리고 누워있는 그림(‘빼앗긴 순정’), 겁에 질린 한복 저고리 소녀가 일본군에 잡아 채이는 그림(‘끌려감’)….

저자의 기록은 그림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에서 역사의 증언자로 성장한 할머니들의 치유기이자 성장기다. 수업에 열심히 참가했던 강덕경(1929∼1997), 김순덕(1921∼2004), 이용녀(1926∼2013), 이용수(1928∼) 할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강덕경 할머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재가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일본인 선생의 권유로 근로정신대에 갔다가 한 일본군에게 겁탈당한 뒤 임시 위안소로 넘겨졌다. 초경도 없었던 어린 소녀는 하루 수십 명의 남자를 상대하다 해방 직전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밴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기를 낳아 고아원에 맡겼지만 이내 폐렴으로 숨졌다. 평생 군인들의 구둣발이 자신을 쫓는 악몽에 시달리며 홀로 외롭게 살았다. 할머니는 좀체 자신의 이런 아픔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러다 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그린 전문 화가들의 미술 전시가 열렸다. 그림들은 일본 병사가 조선인 처녀들을 유린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었다. 강 할머니를 비롯한 할머니들은 “우리를 다시 욕보인다”며 분노했고, 화가들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저자는 이 사건 후 강 할머니에게 “할머니라면 어떻게 그리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

할머니는 얼마 뒤 그 유명한 ‘빼앗긴 순정’을 그리게 된다. 이 그림에 자극받은 다른 할머니들도 적극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나중에 국내에 이어 일본에서도 전시된다. 평균 나이 일흔의 할머니들이 자기 상처를 그림으로 그린 것에 많은 일본인들이 놀라워했다. 하지만 이 전시가 끝난 뒤 강 할머니는 쓰러졌다. 할머니는 저자에게 “이제 막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데…. 미술 선생, 내가 딱 2년만 더 살면 좋겠는데”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말미에 “할머니들의 삶은 ‘못다 핀 꽃’이 아니라 ‘조금 늦게 핀 꽃’일 뿐”이라며 “이분들의 삶과 그림이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썼다.

소박한 문체로 써 내려간 저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할머니들이 받은 고통의 깊이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피해 반세기 만에야 사죄를 요구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 할머니들의 성장은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배에 오른 앳된 소녀들이 고국을 떠나며 떼로 “어머니”라고 부르는 장면 등에서는 눈물을 참기 어렵다. 피해를 끝까지 숨기며 산 이 땅의 딸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면 역사 청산이 얼마나 무거운 과제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자가 20여년 전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일었다”고 고백한다. 할머니들의 고통을 지근에서 목격했던 그로서는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위안부 문제를 역사에서 영원히 덮으려는 시도로 보였던 것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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