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폭염 사망… 그건 사회적 살인이었다 기사의 사진
1995년 7월 시카고 쿡 카운티 시체안치소 주차장에 냉동 트럭들이 주차돼 있다(위쪽 사진). 당시 이 시체안치소는 폭염으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이 밀려들면서 포화 상태가 됐다. 결국 시카고시는 냉동 트럭을 동원해 시체를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아래쪽 사진은 당시 시체안치소에서 시체를 운반하다가 더위에 지쳐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노동자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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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명이 넘었다. 그해 여름, 일주일간 이어진 폭염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1등 국가’ 미국에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 시카고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때는 1995년 7월. 기온이 41도까지 치솟고 체감온도는 52도에 달했으니 푹푹 찌는 날씨이긴 했다. 하지만 더워서 700여명이 숨진 건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폭염사회’는 23년 전 벌어진 ‘시카고 대폭염’을 다룬 작품이다. 미국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48)가 썼다. 그는 참사 이후 약 5년간 희생자들의 이웃 친구 가족을 인터뷰했다. 사망 진단서를 뒤졌고 경찰 보고서를 들춰봤다. 당시 쏟아진 언론 보도도 살폈다. 이렇게 그러모은 자료를 토대로 고난도 십자말풀이를 하듯 참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결국 이 참사의 기승전결이 담긴 역작 ‘폭염사회’를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당부한다. 시카고 대폭염을 “도시 괴담의 하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1995년의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이며, 늘 존재했지만 알아채기 어려웠던 일련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 사건이다. …나는 도시의 외피를 벗겨내 폭염 기간에 어떠한 제도적 장기가 고장 났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법으로 ‘사회적 해부’를 떠올렸다.”

시체를 부검하듯 그 당시 시카고라는 도시를 해부했다는 것인데, 우선 독자들이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일 듯하다. 도대체 시카고의 어떤 사람들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던 걸까.

희생자 중에는 저소득층이, 노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냉방시설을 제대로 갖추기 힘들었을 테니 저런 결과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둘러본 희생자들의 보금자리는 하나같이 누추하고 허술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이 인상적인 건 사회적 부검에 나선 저자의 메스가 더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는 데 있다. 핵심은 폭염 희생자는 덥거나 가난해서 죽은 게 아니라 고립돼 있었기에, 미국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방치했기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두 지역은 시카고 서쪽에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그해 여름 두 지역의 기후는 유사했을 게 불문가지다. 독거노인 비율이나 빈곤율도 비슷했다. 하지만 두 지역의 폭염 피해 수준은 크게 달랐다.

노스론데일에서 폭염으로 숨진 사람은 19명이었다. 비율로 환산하면 10만명 중 40명이 죽었다. 반면 사우스론데일에서는 3명이 사망했다. 10만명 중 4명 수준이었다. 희생자 비율이 10배나 차이가 났던 셈이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나타났던 걸까.

저자는 두 지역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유를 간파할 수 있었다. 노스론데일은 공동화(空洞化)된 마을이었다. 60년대 이후 지역경제가 휘청거리자 인구는 급감했고 약국 식료품점 음식점 같은 상점도 하나둘 사라졌다. 그러면서 범죄율이 치솟았다. 마약상이 활개를 쳤다. 하지만 사우스론데일은 달랐다. 상점가에는 여전히 사람이 넘쳐났다. 범죄율도 낮았다. 상점 지구의 공실률은 시카고 도심지 공실률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즉, 노스론데일에 사는 가난한 독거노인은 더위로 기력을 잃었을 때 거리에 나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이웃에게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공동체가 와해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폭염 사망률이 높은 지역은 생태적으로 쇠퇴해 있었고, 생존율이 높은 지역은 사회적 형태가 비교적 탄탄해 보였다”며 “위험한 지역의 주민들이 고독사로 죽어간 것에는 그들이 좀처럼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이 잇따라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도 정치적 이문을 좇으려고 동분서주한 관료들의 행태를 까발린다. 시카고시가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등 “기업가적 정부 모델”을 지향한 점이 폭염 참사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폭염으로 숨진 독거노인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왜 남성의 피해가 컸을까. “여성은 대부분의 가사를 책임지고 사교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남성은 일터에서 중요한 관계를 키워갔다. 남성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하던 일을 기반으로 다져진 인맥에서 떨어져 나가고 배우자의 사회적 친분관계와 지원에만 의지하게 된다.”

‘폭염사회’는 이렇듯 시카고 대폭염의 사회적 병인(病因)을 소상하게 분석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자면 부럽기도 하다. 우리는 그 많은 사회적 재난을 겪었지만 이런 책을 가져본 적 없으니까. 어쩌면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던져진 묵직한 참고서일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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