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재중] 정책은 타이밍이다 기사의 사진
지난달 30일 저녁 늦게 퇴근하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산업통상자원부 간부였다. 그는 다짜고짜 31일자 국민일보 초판에 실린 기사 ‘폭염… 7∼8월 전기요금 인하 검토’ 제목을 바꿔달라고 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에어컨 사용이 늘고 국민이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한다는 건 알지만 요금 인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전기요금 인하 검토’라는 기사가 보도되면 국민의 기대가 높아져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논리였다.

황당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전화로 처음 인사하는 사람이 과한 부탁을 하기에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나 다급했으면 심야에 신문사 데스크에게 전화까지 했을까 싶어 차분하게 기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정부의 신중한 입장은 이해되지만 그래도 국민들이 전기료 부담 때문에 에어컨 켜기를 주저한다면 민생 차원에서라도 전기요금 인하 문제를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책이란 필요성이 제기될 때 실행 가능성을 우선 검토해보고 당장 추진할 여건이 안 되면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것은 너무 안이하지 않느냐고 했다. 결국 기사 제목을 고칠 수 없다는 얘기로 전화를 끊었다.

아니나다를까 다음 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이번 폭염은 특별재난에 준하는 것이므로 전기요금에 대해 제한적으로 특별 배려를 할 수 없는지 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결국 산업부는 7일 폭염에 따른 전기요금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7∼8월 한시적 누진제 완화를 통한 전기요금 인하, 사회배려계층 전기요금 할인 확대가 골자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타이밍을 놓쳤다. 이미 많은 국민은 전기요금 폭탄을 우려해 에어컨을 켜지 않고 폭염을 견뎌냈다. 산업부와 한전이 이번 주부터 각 가정에 도착하는 419만 가구(전체의 20%)의 7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분석한 결과를 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요금이 감소한 가구가 179만 가구(43%)에 달하고 194만 가구(46%)는 요금 증가액이 1만원 이하다. 전기요금 지원 대책으로 가구당 월평균 1만원가량 요금이 줄어든다고 하니 이미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들에게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그나마 누진제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돌려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산업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전기요금을 인하하면 적자상태인 한국전력의 부담이 커지고, 전기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경험한 폭염은 111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할 정도로 재난에 가까운 수준이다. 당연히 정부도 예년과는 달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특별대책을 강구했어야 한다. 이제는 에어컨을 켜는 게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되었다. 비슷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은 오히려 정부가 국민들에게 돈 아끼지 말고 에어컨을 켜라고 당부하고 있지 않은가.

주택용 전기는 전체 전기사용의 13%에 불과하다. 산업용이나 일반용 전기에 비해 비율이 낮은데도 주택용 전기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에 국민들은 공분하고 있다. 문을 열고 냉방기를 돌리는 상업 매장 등에서 사용하는 일반용 전기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는데 폭염을 견디지 못해 에어컨을 켜는 가정에만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에 주택용 전기 누진제 폐지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일부 시민들은 소송까지 제기했다.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해 매년 반복될 폭염과 혹한 등 기후변화에 맞춰 전력수급계획을 다시 짜고 전기요금 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돼 있다. 폭염에 치이고 전기요금에 가슴 졸이는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정부가 전기요금 인하 문제를 경제 논리가 아닌 에너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김재중 산업부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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