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5> 국군장교 “당신이 필요하오, 도와주시오”

그 자리서 ‘북한군→국군’ 신분 바뀌어… 기적 이루어 낸 힘의 원동력은 기도

[역경의 열매] 김선도 <5> 국군장교 “당신이 필요하오, 도와주시오”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월남 후 국군 군의관이 돼 1953년 의정부 캐나다야전병원에서 수술하는 장면.
“그래, 고맙다. 그럼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내 옷을 다오.” 연락병은 내 지시를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행동했다. 땅을 파서 인민군복과 총을 묻었다. 그런데 국군이 신작로에 길게 늘어서서 북진하며 올라오는 게 아닌가. ‘아, 이제 어떡하지. 잡히면 포로가 되는 건데. 이대로 남한까지 갈 수도 없다. 맞닥뜨릴까. 피할까.’ 그 짧은 순간 수십 개의 생각이 교차했다. 순간의 선택이 생과 사를 결정지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성적으론 피하고 싶었다. 맞닥뜨려 봐야 포로가 될 게 뻔했다. 그러나 나의 의지는 이성과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사복을 입고 북한 군의관 가방을 둘러멘 상태였다. 올라오고 있는 남한 군대를 향해 움직였다.

“주님, 제 운명을 주님께 맡기고 발걸음을 뗍니다.” 어느새 나는 국군 앞에 섰다. 1사단 1연대 3대대였다. 한 장교가 내게 다가왔다. “메고 있는 것이 뭐요.” 뜻밖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내 몸은 생존에 가장 적합한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이, 이거요.” 나는 가방을 열어 보여 주었다. 청진기와 밴드, 주사기 같은 간단한 의료기였다. “탈영한 북한 군의관이군.”

누군가 내뱉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러고 나서 몇 초가 흘렀다. ‘이제 곧 들이닥칠 다음 말에 내 운명이 결정되겠지.’

포로가 되거나 가방만 빼앗기고 내팽개쳐질 수 있었다. 아니면 누군가의 총부림에 길가에 나뒹구는 시체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한마디 말이 내게 들려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아련한 소리였다.

“당신이 필요하오.” “예?” “당신이 필요하단 말이오. 보아하니 북한 군의관이었던 것 같은데, 이쪽에 다친 군인이 많으니 도와주시오.”

나는 그 자리에서 국군 1사단 11연대에 입대하게 됐다. 불과 5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더 이상의 질문도 없었다. 간부들끼리 논의하는 일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머릿속에서 계산했던 모든 경우의 수가 무용지물이 되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럴 수도 있는 건가.’

“국군 군복으로 갈아입으시오.” 얼떨결에 군복을 갈아입고 철모를 썼다. 그렇게 나는 국군 군의관이 됐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려 보면 정말 아찔하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쉬지 않고 기도했다. 순간순간 내면에서 기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북한군에 있으면서도 기도는 빼먹지 않았다. 사상을 검토하는 북한군 문화부 대대장이란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로 늘 나에게 물었다. “김선도 동지, 당신 기독교인 아니오?” 그때마다 나는 거짓말은 할 수 없고, 그저 웃음으로 무마하면서 추궁하는 질문을 어물쩍 넘기곤 했다.

인생의 기점이 어디냐는 질문 앞에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북한군에서 국군으로 5분 만에 변화시키신 하나님을 체험한 그때 그 순간이라고. 그리고 그 기적을 이루어 낸 힘의 원천은 기도라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체험은 나의 일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됐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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