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 기사의 사진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시스토스토미 시술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내 맞은편 침상엔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입원해 있었다. 여자는 종일 울고 소리 지르며 제 엄마와 싸웠다. 그녀는 끊임없이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가능하면 정자세로 누워 있어야 한다는 의료진의 처방은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틈만 나면 제 엄마의 눈을 피해 병실 밖으로 도망쳤다. 맨발로 병동 복도나 다른 병실을 기웃거리다 넘어져 있는 걸 간호사들이 수습해 데려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엄마는 무시무시한 욕설을 퍼부으며 여자를 나무랐다. 여자도 지지 않고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머리를 다쳐서 인지와 행동 모두에 장애를 겪고 있다는 여자와 그녀의 엄마는 매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 싸웠다. 딸의 상태를 고려해서 적당히 져주거나 좋게 타이를 법도 한데, 그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입원해 있는 내내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 모녀의 싸움이 어찌나 격렬한지, 항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참다못해 모녀의 행태를 빈정거리자 내 엄마가 말했다. “그러지 마라. 저 아줌만 지금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울고 있는 거야. 아픈 딸이랑 같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모녀가 내지르는 처참한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그들은 분명 서로에게 기대 울고 있었다. 벌써 4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 본 모녀의 슬픔은 아직껏 생생하다.

사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소리 지르거나 화낸 적이 없었다. 분노와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 수시로 끓어올랐지만, 그 화를 엄마에게 내보일 수는 없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화를 내는 대신 쓸데없는 농담을 하며 서로를 불쌍해했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게 우리가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우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욕설로, 또 다른 이는 눈물로, 심지어 누군가는 웃음으로 슬픔을 드러낸다. 웃고 있는 이의 슬픔이 울고 있는 이의 그것보다 가벼울 리 없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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