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6> 국군 군의관 돼 청천강 건너 북진… 중공군 개입

유엔군 비행기 난사…중공군 추풍낙엽, 처참한 광경에 애달프고 구슬픈 느낌

[역경의 열매] 김선도 <6> 국군 군의관 돼 청천강 건너 북진… 중공군 개입 기사의 사진
1950년 10월 6·25전쟁에 투입돼 인해전술을 펼치다 총알받이가 된 중공군. 국가기록원 제공
그때 정재홍이라는 국군 군의관 중위가 나를 많이 아끼고 보호해 줬다. 그분은 나중에 계명대 초대 학장이 됐다. 나와 마찬가지로 의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많이 챙겨줬다.

그 당시 대대 안에는 영어를 한마디라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와는 서로 영어로 된 의학용어가 통하니 늘 나를 자기 가까이에 두었다. 그래서 단순히 보조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분 대신 내가 환자를 많이 치료했다.

그렇게 해서 국군 군의관이 되었지만 나는 다시 북을 향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가려고 계획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떠나려 했던 북쪽을 향해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청천강을 건너 영변을 지나 운산군 북진읍까지 올라갔다. 이제 또 한번, 내 인생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시작되고 있었다.

북진읍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1950년 10월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사단에서 사단장이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백선엽 장군이었다.

“너희들 전쟁해 봤냐. 싸움해 봤어?”

컬컬한 목소리였다. 마치 삶과 죽음의 전쟁터를 수없이 다녀와 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장군의 모습에서 죽음도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여유가 풍겼다. 왠지 불안해졌다. 두려움에 인색한 장군의 등장이 용기보다는 이제 곧 죽을지 모른다는 긴장감만 더해 주었다.

걱정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중공군과의 첫 대면은 우려했던 것보다 싱거웠다. 저 멀리 중공군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오는 모습이 군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무리의 행렬이었다. 검은색 크레파스로 색칠하듯 그들은 신작로를 새까맣게 채우고 있었다.

그때 ‘쌕쌕이’라고 불리는 호주 비행기가 먼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쾅!” 굉음이 날 때마다 신작로에는 중공군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유엔군 비행기도 연합해 난사를 해 대는데, 조준이고 뭐고 없이 마구잡이로 쏘아 댔다. 그럴 때마다 길가와 논밭, 개울가에는 생명들이 낙엽처럼 후드득 후드득 뭉텅이져 쌓여 갔다.

우린 싸울 일이 없었다. 이 처참한 광경에 압도돼 저 살육이 우리 군을 향하고 있지 않은 것에 그저 안도했다. 동시에 처연하고 애달프고 구슬픈 느낌에 사로잡혔다. 살아 숨 쉬던 생명들이 저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저들은 생명으로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중공군 시체는 하나의 무더기 같았다. 총알 앞에서 생명이란 그저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손끝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생명이든 물체든 돌이든 나무든 모두가 동일한 표적일 뿐이었다. ‘내 생명도, 아니 우리 생명도 저렇게 취급받을 수 있다. 저렇게 고깃덩어리같이 툭툭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중공군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쏘지 마, 쏘지 마. 항복. 항복.”

앞쪽은 옅은 흙색, 뒤쪽은 백색의 양면 군복을 걸치고 길가에 엎드려 있던 중공군들이 총을 버리고 투항하며 올라왔다. 그들의 군복은 눈이 올 때 엎드리고, 눈이 오지 않으면 드러누워 몸을 숨길 수 있는 이중 위장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중공군의 위장 전술도 절대 우위의 무기 앞에서는 버틸 수 없었다.

첫 싸움은 일방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나는 승리가 반드시 기쁨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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