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배병우] 미국 민주주의의 죽음 기사의 사진
2016년 11월 9일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전 세계인에게 충격이었다. 많은 미국인도 경악했다. 그래도 그들은 위안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견제와 균형의 전범인 미국 헌법이 트럼프의 파괴 본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 출범 19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믿음은 부질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독재자의 출현을 경계한 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의 힘을 빼는 이중 삼중의 견제장치를 의회 손에 쥐어줬다. 하지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은 전통적 헌정질서를 깡그리 무시하는 트럼프를 견제하기는커녕 같은 당이란 이유로 동조하기에 급급하다. 공화당 소속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지위를 보호하는 법안 제출을 막았다. 같은 당의 하원 정보위원장 데빈 누네스는 특검조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데 앞장섰다. 같은 당이라도 대통령의 일탈에 대해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규범과 전통은 실종됐다. 대법원(사법부)은 더욱 극명하게 미 헌정 위기를 보여준다.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보수 5명 대 진보 4명으로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굳어지면서 이민, 노동조합, 여성 등에 불리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극우세력의 의제를 관철하는 도구가 됐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러한 현상이 미 헌법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스티븐 레빗스키 하버드대 교수는 헌법을 비롯한 명문화된 제도만으로는 ‘선출된 독재자’를 제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출간된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 How Democracies Die)’에서 민주적 규범, 관용, 자제 등의 불문율이 없으면 견제와 균형에 충실한 헌법이 있더라도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적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점진적이며 교묘하게, 심지어 합법적으로 권위주의로 나아가는 비극적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한다.

SNS 범람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급변과 맞물린 ‘진실의 죽음(the death of truth)’이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해 1월 20일 취임 이후 지난 7월 말까지 4229건의 거짓이나 호도하는 주장을 했다. 매일 평균 7.6건이다. 그럼에도 미국인 상당수는 트럼프의 주장을 사실로 여긴다. 미국인의 3분의 1은 지구온난화가 과학자와 정부, 언론이 작당해 벌인 농간이라고 믿으며, 4분의 1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총 득표수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앞섰다고(사실은 300만표 뒤졌음) 지금까지 믿고 있다. 대중이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판타지에만 머무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한국은 죽어가는 민주주의의 예외인가. 촛불의 총의로 집권한 문재인정부는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지 말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서 드러난 건 진실을 감추기 위한 통계 왜곡이다. 청와대 경제팀은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나 해고된 실직자는 빼놓고 근로자 소득 변동치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KBS의 저널리즘 비평 프로그램은 지난주 신문들의 최저임금 인상 보도 행태를 다루면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최저임금 인상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들의 속내가 대기업 경제구조를 보호하고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진보 성향 노동운동 연구소 이사장은 자영업 위기에 최저임금 인상 영향은 결코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열혈 나치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픽션, 참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는 보통사람이라고 했다. 권력의 생리는 똑같다. 미국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현실에 놀라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발밑도 살펴볼 일이다.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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