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젖소 1마리가 1년에 원유 9382㎏을 생산한다고? 기사의 사진
한국, ‘흰 우유’ 소비량 줄었지만 우유 가공한 유제품 소비는 급증
국내 젖소 사육 두수는 크게 줄어
우량종 젖소 보급 사업으로 마리당 생산하는 원유량은 늘어
“젖소가 우유 짜달라며 줄을 서”
국산 우유 자급률 50% ‘최저’
유제품 시장에서 수입산에 밀려…유럽산 원유값, 한국의 절반 이하
‘꿀잠 우유’ 등 제품을 차별화해야, 가격경쟁력 위해 정부 지원도 절실


“키 크려면 ○○를 마셔야 한다.”

어린 시절, 학부모와 아이들을 유혹했던 이 문구 속 ‘○○’의 정체는 우유다. 그중에서도 ‘흰 우유’를 말한다. 단백질이나 칼슘이 풍부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었다. 정부가 학교나 군대에서 우유 소비를 적극 권장하는 배경에는 ‘영양 섭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화려한 시절’을 누렸던 우유의 현재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다. 2001년 1인당 연간 36.5㎏를 소비했지만 16년이 흐른 지난해 소비량은 연간 33.1㎏에 그쳤다. 1ℓ짜리 흰 우유 1통을 기준으로 3통 정도를 덜 마시게 된 것이다.

정부는 초·중·고교에 다니는 차상위계층에 무상으로 우유 급식을 제공하는 제도까지 도입했지만 소비를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었다. 낙농업계 관계자는 “군대에 납품하는 우유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가 줄었으니 우유 가격이 내렸을까. 묘하게도 그렇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한국 우유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우유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우유 소비량, 정말 줄었나

우유 가격이 비싼 이유를 찾으려면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일단 흰 우유 소비는 줄었다. 다만 전체 우유 제품의 소비는 늘었다. 10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8년 국내에서 소비된 우유는 303만5000t이었다. 지난해 이 수치는 419만9000t까지 늘었다. 10년 동안 100만t 이상 증가한 것이다.

소비를 늘린 주인공은 우유를 가공한 ‘유제품’이다. 초코 우유처럼 ‘유제품으로 분류되는 우유’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여기에다 우유를 주원료로 하는 치즈나 요구르트, 빵 소비도 점점 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한국인이 연간 소비하는 빵류는 2016년 1인당 90개(85g 단팥빵 1봉지 기준)다. 4년 전(78개)보다 12개를 더 먹는다. 이외 각종 과자 등 우유가 들어간 제품이 부지기수다. 이에 1인당 연간 유제품 소비량도 급등세다. 2008년 60.9㎏이었던 1인당 유제품 소비량은 지난해 79.5㎏까지 치솟았다.

다양한 유제품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소비자 입맛에 영향을 끼쳤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신모(38)씨는 “아이들이 딸기 우유를 찾아서 장 볼 때 자연스럽게 손이 그리 가게 된다”고 말했다.

젖소 감소하는데 소비량 감당되나

유제품을 포함한 전체 우유 소비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의 수는 반대 움직임을 보인다. 2001년만 해도 국내에서 사육하던 젖소는 54만8000마리였다. 이후 점점 줄기 시작해 2008년 44만6000마리, 지난해 40만9000마리까지 떨어졌다. 16년간 25.4%나 감소했다.

젖소 수가 줄면서 가공 전 상태의 우유인 원유(原乳) 생산량도 감소했다. 다만 젖소 수에 비해 줄어드는 속도가 더디다. 2001년 원유 생산량은 233만9000t이었고, 지난해엔 205만8000t이었다. 16년 전보다 생산량이 12.0% 줄어드는 데 그쳤다.

젖소 수와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속도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젖소 개량’ 때문이다. 농협 젖소개량사업소는 우량종 젖소 생산을 위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축산농가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번식 능력을 키우고 보다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 종자를 골라내 보급했다.

덕분에 젖소 1마리가 생산하는 원유량은 대폭 늘었다. 2001년만 해도 마리당 연간 6889㎏의 원유를 생산했는데 지난해에는 9382㎏까지 증가했다.

마리당 우유 생산량이 늘면서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된다. 낙농업계 관계자는 “생산량이 많다 보니 젖소들이 아침저녁으로 우유를 짜달라며 줄을 서기도 한다”고 전했다.

국산 자급률 50.3%…수입산 ‘승승장구’

큰 틀에서 우유 소비량이 증가했지만 축산농가는 마냥 기쁘지 않다. 국산이 100%인 흰 우유 외에 치즈 등 다른 유제품에서 수입산이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국내 축산농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2001년 77.3%였던 국산 우유 자급률은 2002년 82.9%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급격한 상승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유 자급률은 2009년 69.5%를 기록하며 70% 선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50.3%까지 주저앉으며 역대 최저치 기록을 갈아 치웠다.

국산 우유가 유제품 시장에서 수입산에 밀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가격경쟁력이다. 수입 유제품에 비해 국산 유제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CLAL’에 따르면 낙농 강국인 유럽과 뉴질랜드의 원유 가격은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당 445원, 419원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의 원유 가격은 지난해 기준 ㎏당 1044원이다. 원재료 가격에서 배 이상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수입하는 유제품의 경우 ‘관세 장벽’도 낮다.

올해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낙농협회와 유가공업계는 지난달 회의를 열고 원유 수매 가격을 이달부터 ℓ당 4원 오른 926원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를 도입한 이후 원유 가격을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연스럽게 유제품과 흰 우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국산 우유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제품을 차별화하거나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차별화와 관련해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꿀잠 우유’ 생산기술 등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진청은 6주 동안 하루 1㎞ 이상 걷게 한 젖소에서 추출한 우유를 분석한 결과 잠을 깊이 자도록 유도하는 호르몬 성분인 ‘멜라토닌’ 함량이 일반 우유보다 5.4% 더 많았다고 밝혔다.

가격경쟁력은 정부 지원이 필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한국의 10배 정도를 정부에서 보조해 가격을 맞춘다”며 “현재 낙농업계와 개선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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