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조민영] 판단자들의 오만과 편견 기사의 사진
연일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뉴스 한가운데 대법원, 그리고 판사들이 있다. 판사들은 누구인가. 법이 규정하는 용어로는 법관. 공공을 위해 일하는 역할로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기에 ‘특정직 공무원’으로 규정돼 있지만, 정부에 속해 정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공무원과 별개의 법관 임명절차는 물론, 법관의 지위와 권한을 헌법으로 별도 규정해 보장하고 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통틀어 사법부 전반에 대해 검찰이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는 현 상황이 ‘초유의 일’로 평가되는 건 판사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내용들은 어떠한가. ‘판사님’들이 가장 높은 위치에서 깨알같이 고민해 추진했던 일들은 국민의 기대와 너무나 달랐다. 충격의 정도도 기존의 다른 사건과는 결을 달리한다. 언론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 등이 추가로 제기되는데 쉽게 익숙해지거나 면역이 생기지 않는 듯하다. 사법부가 이렇게 까발려져도 되나, 과연 수습은 될 것인가 걱정이 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시작점이었던 법관 사찰 의혹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조직을 운영하려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된 문건들이 처음 공개될 때까지도 대법원의 숙원사업을 위해 행정처가 ‘너무’ 열심히 일하면서 벌어진 일 아니겠냐는 옹호론도 있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문건들이 추가 공개되면서 그 같은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행정처 문건에 법원 구성원인 판사는 물론 언론과 변호사단체, 검찰, 정부, 국회의원 등까지 우리 사회 전반을 전방위로 평가하고 재단한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법부 최상위층에 있는 그 자신들을 제외한 이 사회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대상이었고, 상처를 받았다. KTX승무원들의 재판,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재판 등 보통사람들, 약자들의 재판이 사법부 거래 대상에 오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의혹은 더 이상 ‘높은 사람들’끼리의 일이 아닌 게 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문건 속에 등장하는 표현들이 너무 단호하고 때론 폄하적이라는 점이었다. 비판적 기사를 ‘대우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표현’으로 단정하고, 국회의원들을 ‘민변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으로 분류·분석했다. 심지어 국민은 ‘이기적인 존재’로 표현되기도 했다. 평가의 방식들도 그 대상을 어떤 상황의 주체로 보지 않고 철저히 변수와 종속변수 등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공개되지 않은 문건 속엔 더 심한 것들도 수두룩하다. 남을 평가하는 그 표현들을 보면 판사라는 걸 내려놓고 일반 보통사람의 기준으로 봐도 그냥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어린이백과에서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심판자로 표현돼 있다. 판사(判事)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판단하고 나누고 갈라 결론을 내는, 판단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늘 누군가를 판단하는 위치에서 판정을 내려오던 이들이 사법권 독립을 위해 주어진 특별한 지위와 권한을 ‘엘리트 법관들’의 권한으로 착각하면서 벌어진 참극이 아닐까. 엘리트라는 자부심은 심판자로서 ‘나는 늘 옳다’는 오만이 되고, 법관 사회라는 우물 안에서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환경은 편견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대법원이 검찰 수사 요구에 협조를 밝혔던 자신감도, 정작 수사가 확대되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고집스런 모습도 여전히 ‘오만과 편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은 아닌가.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영화 ‘오만과 편견’ 중) 국민의 신뢰와 사랑, 존경을 모두 잃을 처지에 놓인 지금의 사법부가 돌이켜볼 얘기가 아닐까.

조민영 사회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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