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통일, 준비는 하되 입 밖엔 내지 말고 기사의 사진
서독 동방정책, 미·영·프와 긴밀한 협조 유지하고 소련과의 관계도 중시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안착
북·미 간 오해가 쌓이면서 갈등 커져… 특히 한국이 북·미 양국에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광복절을 앞둔 12일 주일, 교계는 8·15의 의미를 새기며 감사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거듭 염원했다. 일부에선 세계 교회와 남북 교회가 함께 만든 공동기도문을 읽으며 희망을 다졌다. 올 들어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린 터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모습이다.

1948년 북한 정부수립 후 처음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치달았던 사태는 극적으로 반전됐다. 다만 6·12 이후 꼬박 두 달이 지났는데 북·미 관계는 관심만큼 진전되지 못했다. 이에 6·12 비판론과 한반도 비핵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급반전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고 조급증이 넘친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구상을 담은 베를린 선언을 내놨고, 반년 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에 호응했다. 핵보유국을 천명한 김 위원장은 자신감을 드러낸 듯하나 실은 핵 개발 이후에 대한 위기감이 작동했을 테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핵 문제 해결이란 공명심이 기묘하게 결합했다. 그 결과가 4·27, 6·12 정상회담이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논의가 출발점에 섰다. 그로부터 겨우 두 달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남·북·미의 갑작스럽고 기묘한 결합을 못미더워해서다. 지난 30년 동안 국제사회를 등지고 핵 개발을 해온 북한을 어찌 믿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좌충우돌 행보도 미심쩍어한다. 문 정부가 주장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해서도 대체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며 지레 한숨이다.

지나친 낙관도, 자기비하적인 비관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체가 누구냐에 대한 인식이다. 기왕에 나온 한반도 균형자, 중재자 등의 역할을 강조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표현은 정확하지 않고 오해의 소지도 크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질서에서 한국이 균형과 중재를 말하는 건 공허하다.

한반도 운전자론도 주체인식은 분명하나 다소 배타적으로 비친다. 특히 미·중을 움직이자면 몸을 낮추고 실리를 좇는 지혜가 필요하다. 독일 통일을 구상하고 설계했던 에곤 바르(Egon Bahr, 1922∼2015)의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을 참고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접근, 역내의 협력적 공동체 구축을 위한 접근 등 이른바 접근자의 역할이다.

바르는 서독의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재위 69∼74)가 내세운 동방정책의 실제 제안자다. 63년 그는 새로운 외교 구상을 발표했는데 핵심은 세 가지, 즉 소련의 영향력 인정, 국가로서 동독 인정, 독일 분단 극복의 전제는 동서 유럽의 긴장 완화다. 바르 구상은 브란트 집권 후 그대로 적용돼 동서 해빙 시대를 열었다. 특히 미국·영국·프랑스 등과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고 소련과의 관계도 중시함으로써 동방정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당시 서독에서 브란트·바르의 동방정책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동독을 용인하고 동서독 상호교류를 통해 대립이 완화된다면 이는 되레 분단 고착화를 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반발도 있었다. 그때마다 바르는 ‘통일, 준비는 하되 입 밖엔 내지 말라’면서 교류 확대를 꾸준히 추진하다 보면 통일이란 목표에 반드시 이를 것이라고 답했다.(안드레아스 폭트마이어, ‘에곤 바르와 독일 문제’, 2001)

오래 전 냉전시기, 게다가 전쟁을 일으켜 패전국이 될 만큼 강대국이었던 독일의 분단상황을 지금의 한반도와 단순비교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바르의 현실주의, 특히 동구권의 패자인 소련을 활용하고 서구 각국과 긴밀한 협력을 얻어내는 등 최종 목표를 향한 치밀한 접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목표를 향한 접근, 성취를 위한 관련국에의 접근은 정말 중요하다.

때마침 북·미 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6·12 이후 후속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이달 들어 돌파구 모색 차원인지 정상 간 친서가 오갔다. 그간 후속 협상이 겉도는 까닭은 조급증도 문제지만 비핵화와 종전선언 연계 여부, 핵·미사일 시설 일부 파기에 대한 평가, 보유 핵탄두 신고 및 처리 문제, 제재 완화를 둘러싼 공방 등 다양한 이슈가 뒤섞여 있는 탓이 크다.

남·북·미 간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믿지 못해 서로의 주장이 오해를 낳고 쌓여 갈등을 키운다. 오해를 풀어줄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이 북·미를 향해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남북 경협의 시급함을 거론하고 통일대박을 외치는 소리에 대해서도 준비는 하되 신중한 접근을 유도해야겠다. 바로 접근자로서의 임무다.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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