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중국으로 기우는 동북아 안보지형 기사의 사진
“중국을 깨우지 마라. 깨어나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1817년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 가 있던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 나폴레옹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기존의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중국. 이를 수호하려는 미국. 미·중 관계는 21세기 국제정치의 최대 변수이고, 특히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는 미·중 관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냉전 이후 동북아에는 미국의 상대적 힘의 우위를 토대로 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에 대해 암묵적 합의가 유지되고 있었다. 미·중은 전략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는 한반도에서 안정과 현상유지라는 정책목표를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 상태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첫째 변화 요인은 중국발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미국의 힘의 우위에 기초한 역내 세력균형에 대한 합의가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힘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공세적인 외교안보 정책으로 미국이 역내에 구축한 전략 기득권을 퇴각시키려 하고 있다.

둘째 요인은 미국발이다. 미국발 변화 요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개인적 요인도 있지만 이보다 더 구조적이다. 많은 미국인은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국제적 역할을 축소하고 정책역량을 국내 문제 해결에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퓨 리서치에 의하면 60%를 넘는 응답자들이 미국은 국제 문제보다 자국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국가 분위기가 현격하게 내부지향적·고립주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건국 후 2차 대전 이전까지 대체로 수동적이었고 고립주의적이었다. 2차 대전 이후에야 미국이 앞장서 국제질서를 창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능동적 국제주의 외교노선에 대한 국가적 합의가 발생했다. 그런데 미국 국민들이 2차 대전 이후 줄곧 수행해 왔던 국제질서와 규범 지킴이 역할을 상당히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가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앞세운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트럼프 개인차원의 리스크는 너무 커 보인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강성·연성 권력을 갖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런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만 해도 그렇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2차 대전 이후 유지된 규범과 규칙에 의거한 경제질서 수호라는 대의명분이 걸려 있어 많은 국가와 미국의 대중 온건파 역시 반드시 필요한 싸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싸움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해소나 기술이전 등 양자 문제로 치환하고,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요구하는 전통적 우방에조차 무차별 관세를 부과하면서 싸움의 명분을 퇴색시키고 있다. 당장은 중국이 움찔할지 몰라도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결국 중국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트럼프는 결국 미국이 아닌 “중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make China great again).”

셋째는 한반도발 변화 요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년의 은둔을 깨며 동북아 외교무대에 전격 데뷔한 후 미·중의 한반도 힘의 균형이 중국으로 기울고 있는 형국이다. 금년 초만 하더라도 미국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중국을 배제하며 주도권을 잡고, 중국은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이내 북한의 고삐를 단단히 조이며 비핵화 속도조절에 들어갔고, 평화체제 논의를 가속화해 미국이 한반도에 확보한 전략 기득권을 축출해 한국으로 영향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세 가지 변화 요인을 감안하면 동북아의 안보지형이 불가항력적으로 중국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도 한국의 정책 선택은 동북아 안보구도 재편 과정에 일정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가 한국의 장기적 안보이익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구축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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