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7> 인산인해 중공군에 포위돼… 필사적으로 기도

포위망 뚫었지만 참혹한 상황에 충격… ‘생명 찾아주는 주의 종 되겠다’ 서원

[역경의 열매] 김선도 <7> 인산인해 중공군에 포위돼… 필사적으로 기도 기사의 사진
1950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과 국군이 후퇴하고 있다.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중공군에게 포위돼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백선엽 장군이 직접 중공군 포로들을 대질하고 나섰다. 장군은 유창하게 중국말을 했다. 포로들은 짧게 답변했다. ‘패했는데도 뭘 믿고 저리 당당하지.’ 그들의 단호함에서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뿌앙∼” 갑자기 사방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 “중공군이다. 포위됐다.” 그러나 우리 군은 어디를 향해 총을 쏴야 할지 몰랐다. 나팔 소리에 혼이 빠지고 엄습하는 공포감이 우리 군을 둘러쌌다. 그때부터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졌다. 전세가 역전됐다.

정말 빗발치듯 총알이 스쳐지나갔다. 죽음과 나 사이의 거리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좌우에 있던 청춘들이 피를 흘리며 하나둘 쓰러졌다. 조금 전만 해도 함께 이야기하고 같이 밥을 먹던 이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때 나는 밭고랑에 엎드려 있었다. 내 몸뚱이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른 막대기 한 토막, 총알 한 방에 부러지고 마는 마른 막대기였다. 엎드린 상태에서 기도에 집중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기도하다 죽겠다는 심정이었다.

“하나님, 저도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요. 지금까지 살려 주셨는데… 이번에도 살려 주세요. 살려 주시면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살려만 주신다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수백 번은 기도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주님의 종이 되겠다는 서원 기도를 수백 번도 넘게 자동적으로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공군은 매복한 산악지형으로 국군과 미군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적군을 삥 둘러싸고 사방에서 나팔을 불어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다행히 유엔군 탱크 부대가 나타나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어줬다.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광경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1개 대대가 거의 전멸했고 1개 소대만 살아남았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뿌연 연기 속에 화약 냄새,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여기저기 흙과 피, 살이 범벅이 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손을 더듬어 얼굴과 팔과 다리를 만져 봤다. 멀쩡했다. 살아있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빠져나간 느낌,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뭔가가 죽어나간 느낌이 들었다.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죽음이 삶을 압도하는 광경이 바로 이런 것인가. 죽음이 이렇게 자명한 사실이었던가. 우리 삶 어디에 이렇게 자명한 죽음이 작동하고 있었단 말인가.’

살고자 하는 본능이 죽음이라는 운명의 추격에 언젠가는 붙잡히고 마는 게 인생의 실체였다. 참혹한 전쟁의 상황은 내게 인간 현존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줬다. 죽음은 인간의 종말이다. 내가 의사가 돼 생명의 끈을 조금 더 연장시켜 준들 죽음을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님, 죽음에 붙잡히고 마는 이 생명이 참된 생명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총알 한 방에 해체되고 마는 생명인데 왜 영원한 것을 꿈꾸게 하셨습니까. 이 생명의 부조리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면 당신 뜻대로 됐습니다. 저는 이제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겠습니다. 죽음에 무릎 꿇고 마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생명을 찾는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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