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지역리포트] 외진 담벼락에 뜬 둥근달과 “속상한 일 있었니? 힘내…” 기사의 사진
서울 서초구 신중초등학교 후문에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 ‘셉테드’를 적용한 디자인 조명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 토끼와 달 그림을 비추는 조명으로 골목을 환하게 만들어 안전한 귀갓길을 만든다는 취지다.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과 위로하는 듯한 문구도 나타나 밤늦게 귀가하는 이들이 미소 짓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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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발생이나 쓰레기 처리 등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디자인을 적용한 도시설계’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Environmental Design)’ 기법이다. 좁은 의미로는 범죄 예방을 위해 취약지역에 가로등 조도를 높이고 비상벨 등을 설치해 범죄예방 효과를 높이는 정책을 뜻한다. 하지만 셉테드 기법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시설물을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도시 경관을 만들어내는 데 폭 넓게 적용된다. 범죄 예방 이외에도 주민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생활 속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활용되기도 한다.

골목길 비추는 조명에도 디자인 적용

지난 11일 찾은 서울 서초구 신중초등학교 후문. 담벼락을 따라 이어지는 일방통행로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주택가가 보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도보로 귀가할 때 이 길을 지나야 한다. 좁은 골목인 탓에 지나다니는 차량도 적다. 주변에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 위치해 있어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문 곳이다. 오후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골목길은 여느 곳과 달리 환했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성인 팔 너비보다도 큰 달 모양의 조명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명은 흡사 그림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골목을 환하게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 반대편에서 빛을 쏘는 방식의 ‘로고젝터’를 설치한 것이다. 일반적인 가로등 조명과 달리 큰 달 모양의 조명은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이 함께 새겨져 시간이 바뀌면서 다양한 표정도 연출됐다. 그 시각 이곳을 지나던 차지성(37·여)씨는 “조명이 설치되기 전에는 길이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 ‘여성안심스카우트’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며 “달 모양 조명이 크게 빛나고 있어 예전보다 귀갓길이 안전하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초구 버들어린이공원. 양재천이 연결돼 있는 이곳 공원은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지만 밤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 풍경은 최근 꽃 모양의 로고젝터가 설치되면서 달라졌다. 가로등 조명 아래로 바닥에 꽃 조명이 빛나면서 ‘꽃길을 걷는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신모(23·여)씨는 “꽃 모양 조명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됐고 이 시간에 산책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지난해 공공시설에 셉테드를 적용하는 ‘도시안전 디자인’ 사업에 4억3000여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낡고 더러워진 담장에 벽화를 그리거나 골목을 비추는 ‘안전아트 그림자 조명’을 설치하고, CCTV도 개나리색으로 칠했다. 장재영 서초구 도시디자인과장은 14일 “초반에는 셉테드가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생활 안전’을 도모해주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됐는데 올해부터는 정책 방향을 ‘아트’로 바꾸고 ‘빛과 그림이 어우러진 어번(urban·도시의) 캠퍼스’를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는 올해 지역주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어번 캠퍼스가 적용되는 대상지를 정하고 지역의 역사나 그림 속 이야기 등을 담은 내용의 디자인으로 셉테드를 활용할 예정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공공시설물 디자인 개선을 통해 도시 경관도 살리고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 주민이 더욱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 문제 해결도 ‘셉테드’ 활용

서울 구로구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가리봉동과 구로4동, 고척2동 일대에 1억9300만원을 들여 셉테드 사업을 벌였다.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자문단)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에 맞는 시설과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7일 찾은 구로구 구로4동 골목에는 연립주택이 촘촘히 서 있어 저층 세대의 경우 창문으로 방 안이 들여다보였다. 반지하와 1층에도 빼곡히 세대들이 위치해 있어 골목길을 지나다니면 자연스럽게 저층에 사는 이들의 사생활 침해가 불가피해 보였다. 구로구는 낮은 창문을 엿보는 사람이 많아 사생활 침해나 몰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셉테드를 적용했다. 사생활 보호 창문을 만든 것이다.

기자가 한 빌라 1층 세대 창문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창문틀에 설치된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바닥에는 노란색 ‘사생활금지선’이 있었다. 이 선을 넘어 창문 가까이 몸을 붙이면 센서가 이를 인식해 자동으로 조명이 들어오는 시스템이었다. 구로구는 단순히 조명을 밝히는 것뿐이지만 효과는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로구 관계자는 “갑자기 불이 켜지면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놀라고 위축되기 때문에 창문 엿보는 것을 중지하거나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문이 없는 탓에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크고 절도 등 범죄 우려가 높은 곳에도 셉테드 기법이 적용됐다. 구로구 가리봉동 하늘공원 인근 주택가 곳곳에는 노란색 간이 울타리가 눈에 띄었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색으로 표시된 울타리는 사람이 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얼핏 보기에는 들어가면 안 되는 경고로 느껴졌다. 평소 이 집은 대문이 없고 집으로 통하는 계단이 위치했는데 외부인들이 이곳에 앉아 쉬거나 떠드는 경우가 많아 주민 불편이 큰 상태였다. 구로구는 여기에 ‘경고’를 뜻하는 노란색을 활용해 울타리를 만들어 집과 골목길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이렇게 공간 분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무단침입과 같은 불편 사항이 줄어든다고 보고 있다.

같은 날 밤 12시30분. 마포구 신수동 한 골목길에는 콘크리트 바닥에 ‘무단투기 단속 중’이라는 문구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골목 한쪽 벽면이 담벼락으로 막혀 있어 전봇대와 담벼락 사이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마포구에서는 이전에도 ‘이곳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벽에 붙이고 작은 화분도 가져다놨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지난 4월 25일 마포구는 이 골목길에 ‘로고젝터’를 설치했다. 특히 밤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밤이 어두울수록 바닥에는 무단투기를 하지 말라는 문구가 더 밝게 빛나면서 쓰레기 무단투기량이 크게 줄었다. 마포구 관계자는 “상습 투기지역에 설치된 경고문은 낮에는 눈에 띄지만 밤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로고젝터는 밤에도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높아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로고젝터는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켜지고 해가 뜨면 자동적으로 꺼진다. 마포구는 이 로고젝터를 음식물쓰레기, 대형 폐기물 등 쓰레기 종류별 배출·신고 방법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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