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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뉴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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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보는 것은 현대인의 일상이다. 매 순간 마시는 공기처럼 뉴스는 흘러 다니고 조그만 액정을 터치만 하면 눈에 쏟아져 들어온다. 공기는 지구가 탄생하면서부터 있었을 텐데 도대체 이 ‘뉴스’란 것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한 진화론적 시각이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원시 인류가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생존 경쟁에 적합한 성질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이 도태됐는데, 진화 과정에서 뉴스에 대한 갈구는 본능처럼 인류에 내재화됐다는 주장이다. 파멜라 슈메이커라는 학자가 제시한 이 시각에 따르면 원시인이 먹을 것을 찾아 동굴을 나설 때 밖에 사나운 짐승이 있는지 두루 살펴본 뒤 움직일 경우 ‘잡아먹힐’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는데, 이 ‘환경 감시’의 습성이 진화 과정에서 인류에 본능적으로 내재됐고 사회 발달 과정에서 뉴스 미디어로 제도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땅히 증거로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의 시각이라 하겠다. 게다가 이 주장은 뉴스 소비자의 관점에만 치중하고 있다. 누가, 왜 뉴스를 알리려 했을까.

뉴스의 기원이란 의문을 사료로 접근해 보면 민주주의 혹은 좀 더 본질적인 표현으로 ‘사회의 보다 나은 형태의 권력 분배’에 대한 갈구와 맞닿아 있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다. 특히 미국에는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많다. 펜실베이니아주 대표로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해 건국 시조(founding fathers)의 한 명이 된 벤저민 프랭클린도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신문을 발행했고, 영국군과의 첫 교전인 1775년 렉싱턴 전투에 참가하고 이 전투를 최초 보도하기까지 한 이사야 토머스도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스파이’ 발행인으로 유명하다.

북미 대륙의 첫 신문 ‘퍼블릭 오커런시스’를 발행한 벤저민 해리스는 이런 가설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이사야 토머스가 1810년 두 권의 책으로 발간한 ‘미국 인쇄의 역사(The History of the Printing in America)’에 따르면 해리스는 원래 런던에서 책을 발행하고 큰 서점도 운영하던,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다. 당시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을 전후로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해리스는 입헌군주제를 지지한 휘그파였다. 가톨릭 절대왕정에 반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주장이 담긴 소책자 등을 발행해 벌금을 물거나 형틀을 차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 자신이 ‘영국의 자유(English Liberties)’와 같은 책도 썼다.

명예혁명이 일어나기 몇 해 전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건너온 해리스는 인쇄소를 차려 주민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냈고, 1690년 9월 20일 처음으로 4페이지 신문을 발행했다.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거나, 다른 의도를 갖고 남용하거나, 혹은 국민과 공유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권력 분산과 민주주의의 진화가 진행돼온 것이라 한다면 대서양을 건너다니며 보인 해리스의 행보는 뉴스의 기원이 보다 나은 사회 권력 분배에의 지향이라는 맥락과 닿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며칠 전 대한민국 국회는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원 38명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원들은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던 고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주영기(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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