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지훈] 달나라가 있어서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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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상에서 숨을 거두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그가 스페인의 한 과학관에서 목격한 영상이었을지 모른다. 에코는 이 과학관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다고 밝혔었다. 과학관은 스페인 서북부 소도시 라코루냐에 있었는데, 에코가 방문했을 때 큐레이터는 그를 천체 투영관으로 안내했다. 동굴처럼 컴컴한 공간이었다. 큐레이터는 에코에게 누우라 했고 둘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생일이 언제인가요? 고향은 어디였습니까?” “1932년 1월 5일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윽고 천체 투영기가 가동되더니 에코의 눈앞엔 그 옛날 자신이 태어나던 날 알레산드리아의 밤하늘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훗날 에코는 이때를 회상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체험했다”며 “결코 돌아오고 싶지 않은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물리학자 정재승이 최근 펴낸 ‘열두 발자국’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정재승은 이렇게 적었다. “(에코는) 자신이 태어난 날의 밤하늘을 당연히 보지 못했지요. 그의 어머니도 그를 낳느라 보지 못했지요. 에코는 그의 아버지만이 테라스에서 숨죽이며 올려다보았을 바로 그 밤하늘을 경험하게 된 겁니다.”

두 달 전 딸이 태어나던 날, 내가 떠올린 것도 에코의 저 이야기였다. 이슥해진 밤의 한복판에서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 홀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얼마간 객쩍은 감상에 젖었다. ‘언젠가 나의 딸도 자신이 태어나던 날의 밤하늘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딸은 내가 오늘 느낀 뭉근한 감동을 되새기게 될까.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하는 걸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어쩌면 저 광막한 우주 공간에 외로이 빛나고 있는 달이 지구와 맺은 관계와 비슷할 거라고. 천문학적으로 살피자면 달은 지구의 자식이다. 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지구에서 떨어져 나온 게 달이어서다. 지면이 단단한 ‘지구형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 가운데 달처럼 거대한 크기의 위성을 갖춘 행성은 지구가 유일하다. 지구가 달을 가지게 된 건 남녀 간의 사랑이 그렇듯 우연 그 자체였다.

달은 지구가 있으니 생겨났지만 지구인도 달이 있기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구와 달은 인력과 척력을 주고받으며 밀물과 썰물을 만든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지구의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져 있는데, 달은 이런 기울기에 안정성을 부여한다. 달이 없다면 지구는 자주 기우뚱거리며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보일 게 불문가지다. 천문학자 트린 주안 투안은 저서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에 이렇게 썼다.

“만약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전축은 ‘무질서’가 아닌 ‘예측 가능성의 부재’라는 과학적 의미에서 매우 혼란스럽게 움직였을 것이다. 지구는 똑바로 서 있다가 아무 예고 없이 지금처럼 23.5도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완전히 기울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변화는 지구의 삶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기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지구와 달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여긴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딸이 태어났으니 잔잔했던 내 삶엔 이전까진 경험하지 못한 희로애락의 파도가 칠 것이고, 그래서 일껏 쌓은 모래성이 부서질 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달이 있어 휘청거리지 않는 지구처럼 딸이 있기에 나의 삶 역시 흔들리지 않고 더 안정된 모습을 띨 수도 있으리라.

일반적인 부모와 자식 관계가 그렇듯 달과 지구 사이의 간격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별’ 사이의 거리는 1년에 약 3.8㎝씩 멀어지고 있다(사족이지만 이건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지구에서 바라보는 달처럼 나의 딸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뒷면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부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4월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우린 누군가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게 겸연쩍었고, 그래서 양가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읽는 것으로 주례사를 갈음했다. 당시 내 어머니는 말했다. “효도는 안 해도 된다. 네가 태어나는 순간 우리에게 해야 할 효도는 다 했다. 그런 마음으로 너를 키웠다.” 나는 그날 어머니가 우리에게 건넨 말씀의 뜻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게도 달이 생겼으니까.

박지훈 문화부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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