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정치인에게 ‘쇼’를 許하라 기사의 사진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할 때는 문간방에서 살았다. 주인 가족과 같은 현관으로 출입했고 화장실도 함께 써야 했다. 웬만하면 볼일은 밖에서 해결했다. 집에서는 잠만 잤다. 여름이 고역이었다. 늦은 시간에 들어가 주인 내외의 안방 옆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골목길에서 들여다보이는, 현관 바깥의 수돗가에서 불도 켜지 못한 채 바가지로 찬물을 끼얹으며 지냈다. 신문사 입사 후 몇 개월 지났을 때 이사했다. 마포구 노고산동의 옥탑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싱크대가 있고 방이 하나 있고 방 옆 좁다란 통로 끝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그곳에서 4계절을 보냈다. 이대 캠퍼스와 신촌로터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가장 좋은 계절도 여름이었고 가장 힘든 계절도 여름이었다. 여름날 저녁 퇴근한 후 옥상 난간에 앉아 환하게 불 밝혀진 거리를 내려다보며 맥주 한잔 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휴일 낮에 볼일을 보는 건 고역이었다. 안타깝게도 화장실로 이어지는 좁다란 통로에는 선풍기를 연결할 만한 콘센트가 없었다.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달살이’를 하고 있는 옥탑방 사진이 처음 공개됐을 때 가장 주목한 건 화장실 위치였다. 다행히 박 시장의 옥탑방은 양쪽 방 사이에 화장실이 있었다. 선풍기 바람이라도 맞으며 볼일을 볼 수 있는 구조처럼 보였다. 옥탑방의 화장실 위치,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옥탑방에서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일각에서는 ‘월드 클래스 보여주기 퍼포먼스’라고 비난한다. 아침에 배달시킨 죽을 든 공무원들이 옥탑방 골목길 언저리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는 건 사실 불편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쇼를 집어치워라”는 쪽보다는 “쇼를 통해서라도 느껴보라”는 입장이다. 쇼든 뭐든 한여름 옥탑방에서 한 달을 지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인들의 행보를 흔히 ‘쇼’라고 치부한다. 비아냥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정치에서 쇼는 의미가 적지 않다.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자영업자들을 만나고 야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부르는 것도 다 쇼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언제 어디서 만날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어떤 형식으로 만날지 따져보는 것도 쇼의 흥행을 위한 것이다.

이왕 하는 쇼 좀 제대로 하면 좋겠다. 식당 찾아가 찌개 뚝배기 한두 번 손님상에 들고 가는, 그런 쇼 말고 제대로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쇼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시장에서 재료 구입하고 다듬고 준비해서 가게 문 열고 장사하고 영업 끝난 뒤 청소하고 정리하고 퇴근했다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식당 상인들의 생활을 사흘만 해보면 머리에 떠오르는 정책의 디테일이 달라질 터이다. 수십년 그런 생활을 해온 상인들의 가슴속 깊은 아픔까지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그 모습을 본 상인 대다수는 정치인에게 “쇼하지 마라”는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꺼낸 김에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된 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싶다. 소속 상임위를 처음 경험하는 의원들은 사흘 정도 소속 상임위가 다루는 현장에서 지내보는 것이다. 법안 심사에도 큰 도움이 될 듯싶다. 국방위 소속이라면 겨울에 GOP에서 사흘 정도 지내보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이라면 농어촌을 찾아 사흘 정도 농·어민과 함께 생활하는 식 말이다. 옷 갈아입고 한두 시간 동안 총 한 번 겨눠보거나 삽 한 번 들어보는 쇼 말고.

오는 19일 박 시장이 ‘옥탑방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강북구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옥탑방 체험만으로 산적한 문제의 해답을 모두 얻지는 못했을 테지만 그 경험이 내놓을 정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쇼를 상설화할 명분이 생기지 않겠는가. 간판만 올렸다 내리는 허접한 쇼 말고 흥행이 될 만한 제대로 된 쇼.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