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히브리 왕국의 소금 기사의 사진
소금 결정체
다윗왕 시대의 히브리 왕국은 지금 이스라엘 영토의 다섯 배일 정도로 크고 막강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소금 교역이었다. 유대 광야를 통과해 사해 북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연결된 도로 중 룻기서에서 읽을 수 있는 ‘소금길’이 있다. 그렇게 부른 이유는 사해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해로 소금을 사러 오는 상인이 많았다는 얘기다.

다윗왕이 전성기에 남쪽 에돔 왕국을 복속시킨 것은 군사적인 면뿐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큰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두메라고도 불리는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였다. 에돔인들이 살던 산악지대는 사해 남단 제러드강에서 시작해 홍해까지 가는 큰 골짜기가 아카바만까지 뻗어 있었다. 그곳 사해 아래쪽엔 염곡(the Valley of Salt), 곧 소금 골짜기가 있었다. 남쪽으로 갈수록 소금 염도가 더 높아 목화 같은 소금 결정이 뭉쳐져 있다. 염곡에는 비록 정제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소금이 무진장 있었다.

에돔 왕국은 염곡을 안 빼앗기려고 격렬히 저항하는 통에 다윗왕은 에돔군 8000명을 염곡 전투에서 죽여야 했다. 소금이 그만큼 중요한 재원이었다. 에돔에는 구리와 철광산도 있었다. 다윗이 에돔을 정복한 것은 곧 내륙의 소금 생산을 독점했다는 것을 뜻했다. 그는 지체 없이 소금 골짜기와 구리, 철광산을 개발해 대량의 소금과 구리, 그리고 철을 생산해냈다. 소금은 옛날에는 워낙 귀해 금값에 버금가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고대에는 소금 한번 무사히 잘 운반하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내륙과 사막 길 운반비와 통행료는 더 비싸 보통 소금 값의 3∼10배 들었다. 소금은 히브리 왕국의 주요 수출품이었고 내국민에게는 싸게 팔았다. 또 상수원 수질 관리에도 소금을 사용했다. 소금의 대량 생산과 전매로 다윗 왕국은 국부의 기틀을 잡았다.

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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