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이러다 솥단지 시위 재연될라 기사의 사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자영업자·소상공인들 분노 점점 커져가는 상황
정부 다양한 지원책 내놓고 있으나 반응은 냉담
2004년의 솥단지 시위 올해에 다시 벌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워


칠레에는 ‘카세로라소’라는 시위문화가 있다. 카세로라소의 어원은 요리할 때 쓰는 ‘카세로라’라는 솥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에 맞서 1980년대 솥과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민주화 시위를 벌인 데서 비롯됐다. 비슷한 시위가 이달 초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있었다. 교육 문제를 놓고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솥뚜껑 등을 두드리며 무상 공교육 보장 등을 요구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어서 카세로라소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먼 나라 얘기를 꺼낸 건 노무현정부 때인 2004년 11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이른바 ‘솥단지 시위’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의 식당 주인을 비롯한 자영업자 3만여명이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생존권 사수를 위한 음식업주 권리대회’를 가졌다. 그들은 손님들을 위해 밥을 짓던 솥과 솥뚜껑을 가져와 한곳으로 내던졌다. 순식간에 ‘솥뫼’가 생겨났다. 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 돼 죽을 지경이라는 호소와 분노의 표시였다.

장사는 직업전선에서 밀려난 이들이 거의 마지막으로 기대는 언덕이다. 삼겹살집, 치킨집, 피자집, 커피점, 슈퍼마켓, PC방 등 해마다 많은 은퇴자들이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재 569만여명이다. 무급가족 종사자를 포함하면 690만명에 가깝다. 생계형 창업이 대부분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창업과 폐업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이유다.

2004년 사례에서 보듯 자영업자·소상공인 문제는 역대 정부의 고민거리였다. 힘들어도 참으며 생업에만 열중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정부는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면서 이런저런 약속들을 했다. 하지만 근본 처방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베이비붐 세대들까지 골목상권으로 진입하고, 대형 프랜차이즈의 성장과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요즘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이번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주요인이다. 그들은 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경제 취약계층에 속하는 자신들의 임금 지불 능력과 근로자의 생산성 등을 두루 고려해 차등 인상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최저임금이 2년 만에 일률적으로 29%나 올라 인건비 상승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 데다 근로시간마저 단축돼 저녁 손님은 줄고 있다. 그러자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며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간 것이다. “최저임금법을 지킬 수 없으니 나를 잡아가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저항의 정도가 예사롭지 않다.

당연한 현상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느는 추세다.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아야 할 아르바이트생 등 저임금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줄고 있다는 뜻이다. ‘을(乙)들의 싸움’도 심화되고 있다.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표면화되자 정부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며칠 전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내년까지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은 연 매출 24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정작 자영업자·소상공인들 반응은 냉담하다. “탈세로 임금 인상분을 충당하라는 거냐. 연 매출 3000만원이면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이라며 한숨을 짓는다. 그동안 정부에 수차례 보완책을 건의했으나 엉뚱한 방안들만 내놓는다는 게 그들 주장이다. 정부는 조만간 임대료 완화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이 담긴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종합 지원책을 발표할 예정이나 이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것이라며 별로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들 얘기가 전부 옳다는 건 아니다. 그동안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며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악덕업자들도 일부 있을 것이다. 과다한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등도 개선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고용 악화와 물가 상승,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추락하는 고용률과 높아가는 실업률 등을 근거로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인해 국가경제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물러설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가 오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하는 총궐기대회 때 솥단지 시위가 재연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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