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진우] 자기기만적 이미지 정치 기사의 사진
美 우파정권이 기후변화를 좌파 의제로 낙인 찍은 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위해 자신을 속인 자기기만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좌우를 뛰어넘는 문제인데 文정권은 이를 우파 의제로 낙인 찍은 것 아닌가


모든 정치는 시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할 때 이미지 정치가 되고, 이러한 이미지 정치는 현실을 외면할 때 스스로를 기만한다.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이 모순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운전 경험이 없으면서도 자동차 경주자처럼 멋지게 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병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병원에 가는 대신 수개월 동안 징후를 외면하는 사람, 모든 정황이 외도를 말하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음으로써 잘못된 것을 믿는 자기기만자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기만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 정치적 행위도 예외가 아니다. 정권은 자기가 믿는 것을 실현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대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은 내적 갈등에 빠지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모순된 행위를 할 수 있다. 신념과 의견을 바꿀 수도 있고, 예전에는 믿지 않았던 것을 믿을 수도 있다.

정권을 잡고 난 후 상황이 바뀌면 집권하기 전에 생각했던 정책을 변경할 수도 있다. 그것이 정치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을 동시에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자기기만의 모순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정책 변경이 마치 이념적 배신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릇된 것을 고집하는 정권의 아집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 자기기만의 불행한 결과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산불,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들판,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폭염. 이 자연 재난이 사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기후를 변화시킨다는 과학적 인식은 이제 상식이다.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징후는 흘러넘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제임스 한센이 상원에서 지구온난화를 경고한 게 1988년 6월 2일이니 기후변화라는 의제가 세계 정치무대에 등장한 지도 꼭 30년 됐다. 온난화에 대처할 시기를 허비한 데에는 우파 정권의 자기기만이 큰 몫을 했다. 2012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했던 교토의정서는 이미 공염불이 됐으며, 이를 대체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파행에는 미국의 우파 정권이 있고, 그 한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다. 파리협약으로 미국인들이 수백만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구온난화의 문제점이 명백한데도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정보와 사실을 조합하고 왜곡함으로써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우파 정권이 기후변화를 좌파의 이상주의적 의제로 낙인찍으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의 징후가 농후하고 그 재앙적 결과가 분명한데도 기후변화는 자연보호 광신자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는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는가? 정치적 자기기만의 핵심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강화하기 위하여 현실적 문제로 제기되는 것을 반대정파의 의제로 폄훼한다는 것이다. 좌파는 구성원들의 평등을 향상함으로써 사회적 평화를 실현하려고 한다. 평등과 평화는 좌파의 의제다.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는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의 핵심 키워드가 평화라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전쟁의 위험을 동반하는 남북 갈등, 사회를 분열시키는 이념 갈등,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양극화 등은 좌파 의제의 정당성을 대변한다. 문제는 이 정권이 평화의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시급한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거나 왜곡할 때 발생한다.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경제이다.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등의 논의에서 드러난 것처럼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관한 구체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혹시 경제성장을 우파의 의제로 낙인찍고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것은 아닌가? 경제성장을 얘기하면 재벌 옹호로 비치고, 대기업의 투자활성화가 양극화를 심화한다고 믿는 것은 아닌가? 경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징후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평화 정권의 이미지만 강조한다면, 이는 사회 평화가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이미지 정치의 자기기만이 무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후변화처럼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좌우를 뛰어넘는 문제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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