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13> “감리교 신학에서 길을 찾겠다” 신학대 입학

함께 예배당 세운 최요한 목사 권유… 전적타락·선재적 은총 등 불꽃 토론

[역경의 열매] 김선도 <13> “감리교 신학에서 길을 찾겠다” 신학대 입학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흰 동그라미)가 1957년 감신대 학생회 임원 신분으로 홍현설 학장(맨 앞줄 왼쪽 세 번째)과 함께했다.
예배당 봉헌예배를 드릴 때 매슈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과 기독교대한감리회 7대 감독인 류형기 목사님이 함께했다. 그때 내게 불타는 서원이 일어났다. “하나님, 일평생 하나님의 집을 짓는 종이 되겠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을 많이 짓는 종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근래 들어 예배당 건축에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 사랑과 교회 건축은 그렇게 쉽게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성도들의 공동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교회 제도와 건물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눈에 보이는 교회 사랑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반세기나 앞서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과 조직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치무라 간조 같은 성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그 사조는 교회당을 짓기보다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었다. 교회의 본질에 집중한 나머지 그 본질을 담을 수 있는 예배당과 교회조직을 간과했다. 그 결과 기독교 사상은 발전할 수 있었지만,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오자마자 예배당부터 지었다. 집을 개조해서 교회로 만들고 천막을 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경기도 의정부 예배당 건축은 내게 매우 의미 있는 체험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이 모호하고 추상적일지라도 일단 믿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한걸음 내디딘 만큼 비전의 정체가 선명해지고 추가로 내디딜 때마다 더더욱 분명해진다.’

나는 그때 비전을 사유하고 성취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 출신이었던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최요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반발심이 올라왔다. “목사님, 존 웨슬리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권위를 축소하는 것 아닙니까.”

그때마다 최 목사님은 ‘선재적 은총’이라는 낯선 개념을 제시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선재적으로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회복했습니다. 인간에게도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 자유의지만큼 인간에게도 스스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다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이 깨지는 것 아닙니까.”

최 목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때는 밤늦게까지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도 틈만 나면 토론을 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진척되지 못했다. 어느 날 최 목사님이 나를 불러놓고 이야기했다.

“김 권사님, 감리교 신학을 해 보시지요.” “저는 장로교 출신인 데다 아직 고민이 정리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감리교 신학을 해 보라는 겁니다. 신학교에 가서 답을 구하면 되잖아요. 김 권사님, 목사가 되기로 서원도 하셨잖아요. 이제 그때가 온 겁니다.” 나는 1954년 4월 감리교신학대에 입학했다.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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