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차은영] 에너지 정책을 보는 시각 기사의 사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폭염이 8월 중순을 넘어서자 한풀 꺾인 듯하다. 여전히 평균 기온을 웃돌기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견딜 만해진 것을 보면 세월의 흐름은 거를 수 없는가 보다. 올여름 대형 쇼핑몰은 몰캉스라는 신조어를 나으며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던 그 곳도 한산해진 것을 보면 확실히 무더위의 한 고비는 넘긴 듯하다. 가정에서 온종일 켜놓기 부담스러운 에어컨 비용을 줄이기 위해 어차피 에어컨을 켜두는 쇼핑몰을 이용한 것은 합리적으로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의 결과였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형태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지난 16일 발표된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 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원전 이용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이것은 탈원전이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는 정부 주장과 상반된다. 원전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인식으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며 정부는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신규 원전 4기의 건설도 백지화했다.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정책의 제대로 된 청사진 없이 무리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원자력은 발전단가가 저렴하면서 효율이 높은 에너지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 철강, 디스플레이, 화학산업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값싼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탈원전을 지향했지만 재검토하는 선진국이 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제로 선언을 했다가 오히려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2%로 상향조정했다. 미국도 1978년에 원전 건설을 중단했지만 2011년부터 건설을 재개하고 외국 수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웨덴은 1980년에 탈원전을 선언했으나 대안을 찾지 못해 여전히 가동 중이며 현재 원전 의존도가 33%다. 그밖의 국가에서도 탈원전의 속도조절론이 대세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산업 측면에서 보더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급속히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원자력뿐이다. 원전산업은 반도체와 자동차에 버금가는 수출산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쟁력을 정부 스스로 파괴해 버림으로써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2030년까지 1조 달러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 건설시장에서 중국에도 추월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만약 원전사고가 터지면 재앙이 된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지만 이것은 관리를 철저히 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옳다. 배 사고가 난다고 모든 배를 폐기처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더 좋은 배를 만들고 관리를 철두철미하게 하는 교훈을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원전 비중을 줄이는 게 바람직할 수 있지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대체에너지로 거론되는 태양광과 풍력은 비용 면에서 아직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상당한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는 에너지원이다. 최근 정부의 무분별한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산과 들에 온갖 태양광과 풍력 장치가 생겨나면서 훼손된 환경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값비싼 LNG 설비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탈원전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부담은 기업과 가계가 떠맡아야 한다. 당장은 정부가 가격 통제나 선심성 정책으로 누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한국경제를 멍들게 할 수 있다. 올여름 같은 폭서에 전기가 블랙아웃된다거나 3∼5배의 전기료를 감당해야 한다면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로 직결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지금보다 겨울에 더 춥게 여름에 더 덥게 지내는 불편한 삶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차은영 경제학과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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