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감성노트] 무기력 떨쳐내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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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에게 의욕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도와줄 때 종종 애를 먹는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의욕이 없으니까 누워 있는 거죠.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운동을 해요.” 하지만 의욕은 쉬면서 기다린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심리치료 중에 ‘행동활성화 치료(behavioral activation)’라는 것이 있다. 이 치료법의 핵심은 내적 의욕이 아니라 외적 가치에 따라 활동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의욕이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에 따라 활동을 조금씩 해나갈 때 비로소 의욕이 생긴다는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 아니라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으로 행동한다고 부른다. 내면의 의욕이 외부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일 때 의욕이 생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무심결에 쉽게 내뱉는 말 중에 하나가 “귀찮아”이다. “귀찮아서 운동도 하기 싫어요. 괜히 그딴 것 해 봐야 뭐해요, 귀찮기만 하지”라고 한다. 의욕이 없다며 “귀찮아”라는 말로 행동을 대신해 버린다. 이런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귀찮아”라는 말의 이면에는 무기력이 아닌 또 다른 심리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귀찮아”라는 말에는 회피 심리가 숨겨져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평소에 해 보지 않았던 것을 경험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배우는 것, 낯선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이런 것에는 불확실성과 불편함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겨서 곤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에는 불편과 위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희망도 함께 녹아 있다. “귀찮아”라고 하며 확실한 것에만 자신을 묶어 두면 무기력이 벌칙처럼 따라붙는다. 편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삶은 무의미해지고, 마음은 메말라 버린다. “귀찮아”가 입버릇처럼 나오게 된다.

“귀찮다”라는 말은 자기 합리화다.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갔다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창피해지는 것이 싫어요”라며 배움과 도전을 거부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지, 귀찮게 이 나이에 뭘 해요”라며 세월의 흐름에 자기를 눌러 앉혀 버리기도 한다. 이건 모두 “귀찮아” 하는 말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의욕은 새로운 경험을 반복해야 유지된다.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흥분되고 짜릿한 느낌도 도파민 때문이다. 약간 불확실하고, 약간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든 일단 시도를 해 보는 것이 좋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 이왕 할 거 잘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일단 시도해 보고,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직접 체험해야 한다. 생각만 하고 이리저리 따지고만 있지 말고 새로운 경험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귀찮아”를 물리치는 에너지도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생긴다. 몸으로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더 귀찮아진다. 처음에는 하기 힘들다고 느껴도 조금씩 반복해서 하다 보면 나중에는 움직이기 쉬워진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뒤에서 밀어주면 시동이 다시 걸리는 것처럼, 처음에는 힘들어도 한 번 발동이 걸리면 그다음에는 움직이기 수월해지고 이런 경험이 누적돼야 활력도 따라온다.

일을 끝내고 지치더라도 “귀찮아”라고 하지 말고, 시집 한 권을 들고 집 근처 카페에 가라.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읽어라.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해도 좋다. “귀찮아”라고 하며 휴일에 집에서 쉬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멀리 여행 갈 수 없다면, 마치 여행을 떠나 왔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동네의 작은 골목을 헤집고 다녀라. 미술을 좋아한다면 시내로 갤러리 투어를 떠나라. 열정 넘치던 예전의 자기 모습을 떠올려 보고, 과거의 내 행동을 따라해 보겠다고 해도 좋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장 자크 루소가 말하지 않았나. 사람은 경계를 넘어서서 낯선 영역을 탐색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귀찮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주저앉히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귀찮아” 속에 숨겨진 회피 심리도 사라진다. 그래야 열정도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게 된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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